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271> 공존의 정치
‘전대협 1기 의장’ 운동권 출신 여당 원내대표
관훈클럽 토론회서 ‘공존의 정치’ 이례적 호소
양극화·빈부격차 해소 상생경제-동반성장 강조
“이념·빈부·노사·세대·젠더 분열 치유하고 공존”
“유연한 진보-합리적 보수, 대결정치 넘어서야”
정치 입문 뒤 오랫동안 고민하며 진화한 흔적
나경원, 여권에 책임 미뤄 ‘공존의 정치’ 반격
이인영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의 원내대표입니다. 1964년생이니까 55세입니다. 충주고 출신으로 재수해서 1984년 고려대 국문학과에 입학했습니다. 1987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전국대학생 대표자협의회(전대협) 1기 의장을 지냈습니다. 그 뒤에도 전민련 정책실 간사, 전국연합 조직국장, 한국청년연합회 지도위원 등 재야 시민운동을 했습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을 맡고 있던 1987년 겨울 이인영이 영호남 지역감정 해소 집회에 나가 연설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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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미래 정치로 나아가야 하며, 그것은 공존의 정치입니다. 지금의 정치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밀어내기에만 급급하고 있습니다. 그런 정치로는 결코 국민들께서 염원하는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만들 수 없습니다.
여야가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의 생각을 포용하며 함께 대한민국의 미래를 모색하는 정치가 돼야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커다란 위기와 도전의 갈림길 앞에 서 있습니다.
미-중 무역갈등의 심화는 경제 냉전 시대의 개막을 우려하게 하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도 우리나라가 철저히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될 중대한 과제입니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자율주행, 공유경제, 로봇, 드론, 3D 프린터 등 지금 세계는 혁신을 위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당면한 위기와 도전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변화와 통합의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또한 사회 양극화와 빈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 상생 경제와 동반성장의 좋은 성장(Good Growth)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단초를 공존의 정치에서 찾고, 국회에서부터 시작하고자 합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많은 갈등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념, 빈부, 노사, 세대, 젠더 등 사회 곳곳의 분열을 치유할 길은 공존에 있습니다.
서둘러 우리 사회 공존의 해법을 찾고 과감하게 혁신 경쟁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그 공존이 시작되어야 할 곳도, 우리 사회 공존의 기틀을 만들어야 할 곳도 국회입니다. 공존의 정치를 위해서는 진보는 보다 유연해져야 하고, 보수는 보다 합리적이 되어야 합니다.
저부터 경청의 협치 정신으로 공존의 정치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지금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야당을 설득하고 입장차를 좁히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습니다. 정부에도 여당에 앞서 야당부터 소통해달라고 말씀드렸고, 야당에도 정부와 소통해 나갈 수 있도록 주선할 것입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협치를 제도화하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지긋지긋한 국회 파행의 악순환을 끊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야당과 머리를 맞대고 찾고 싶습니다. 공존의 정치는 지금으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어려운 과제처럼 보이지만 우리 사회가 가지 않으면 안 될 길입니다.
“86년 여름을 거치면서 학생운동 내에 이른바 ‘품성론’이라는 게 퍼졌습니다. 논의의 핵심은 운동 이전에 사람이 제대로 되었느냐를 따져보자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운동하는 사이에, 공동의 적을 놓고 투쟁하면서 서로에 대한 모독과 불신, 격하를 서슴없이 자행하며 상처를 주던 우리 스스로의 자화상에 대한 반성의 계기를 삼기에 충분했습니다.
운동의 미명 하에 노선투쟁, 사상투쟁의 치열성이 운동 발전의 기관차이고 동력이라며 얼마나 많은 총과 대포를 서로의 가슴을 향해 쏘았던가! 어쨌든 그 품성론 덕에 자세의 수정이 있었고, 더 나아가 운동의 큰 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내가 제일 옳다는 선민의식, 전위의식은 대중이 더 옳고 현명하다는 대중 주체 의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요즈음 정치 현실, 대통령과 참여정부, 그리고 우리 당의 상태를 반추해 보면서 지난 20년 전 6월 항쟁이 있기까지의 과정과 연관해 몇 가지 되짚어 봅니다. 우리는 우리만이 옳다는 정치적 선민의식에 빠져 있지 않은지 우선 반문해봅니다. 한나라당에 비해 우리가 옳다는 것은 맞지만, 국민대중보다 우리가 더 옳다는 것은 오만이고 독선일 것입니다. 대중 개개인은 모자라고 느릴 수 있지만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은 여전히 진리입니다.”
“기존의 사회구성체 논쟁의 연장선에서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단계를 규명하는 것은 더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매판성, 독점성을 핵심으로 그 내면에 착취와 수탈의 메커니즘을 폭로하고, 이에 복무하는 권력의 파괴와 새로운 건설이라는 논리적 메커니즘은 지금 이론적 무기로서의 효용성을 잃었습니다.”
“사회투자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 중도평화국가의 건설을 위해, 때로는 개혁을 위해 시장을 압박하고 때로는 시장과 과감히 타협할 필요가 있습니다.”
“형용모순 같지만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새로운 성찰을 통해 열심히 걷는 인간의 얼굴을 한 따뜻한 시장경제, 아름다운 시장경제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87년 민주화운동 당시 이른바 민주대연합이라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재야와 학생 그리고 사회운동세력의 입장에서 제도정치권 야당이 다소 불철저하지만 군사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연합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공동의 가치를 위한 연합이 개량주의가 판을 치는 계기가 되었다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지금도 그때 손을 잡은 것이 시대의 당위적 요청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저는 여전히 손을 잡는 문제, 안아야 하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에 와서 반군사독재는 반수구냉전, 반보수우경화, 비신자유주의가 아닐까요? 민주대연합은 중도대연합이 아닐까요? 또 민주정부수립은 정권재창출이 아닐까요?”
“80년대 학생운동을 할 때 한국사회의 자본주의 성격을 둘러싸고 논쟁이 많았다. 이른바 한국사회구성체 논쟁이었다.
어떤 이들은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라고 했고, 또 어떤 이들은 식민지반자본주의라고도 했으며 관료독점자본주의라고 한 사람들도 있었다. 한국사회 성격을 무엇으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주요모순, 계급, 공격 방향에 대한 전략 전술이 명료해지고 그래야 과학적 사회운동, 변혁운동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 꽤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어떠한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노선이 분화되고 그룹으로 나누어지면서 주도권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20여년이 지난 지금,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 문제의식이 둔감해져 있다. 분명 한국 자본주의의 어떤 특징이 오늘 한국의 시장경제에 새로운 양극화 양상을 만들어내고 있을 것이다. 막연하게나마 신자유주의라는 세간의 진단에 그저 공감할 뿐이다.”
“사회주의는 평등을 내걸었지만 소수가 특권을 향유하고, 대다수는 소외시키고 방치한 결과 멸망하고 말았다. 아주 많은 민주주의의 절차와 과정이 배제된 채 다수독재라는, 사실은 위임받지 않은 위임의 미명 하에 자행된 비판과 감시 기능의 부재가 초래한 결과였다.
나는 이런 생각들 때문에 그동안 민주주의로 일관했고 지금도 다시 민주주의로 돌아와 있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모든 걸 다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다. 내 생활도 사람들의 요구도 좀 더 새로운 것을 다른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문득 자유주의가 생각의 눈에 들어와 박힌다. 솔직히 자유주의를 너무 멀리 놓아둔 것 같다. 확 안아 들이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었다. 뭔가 개인주의와 연결되고 자본주의 시장질서로 귀결되는 듯한 그 느낌이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하게 했다.
그러나 솔직히 내 자신의 모습도 이중적이다. 공동체를 매우 지향하는 것 같으면서도 사생활의 절대 자유를 만끽하고 싶어 한다. 굉장히 많은 자유주의자들이 우리 사회에 양산되었고 이들을 모두 공동체의 이상으로 한순간에 동원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들은 개개인의 자유가, 공동체의 자유가 억압받는다고 생각하면 다양한 행위로 저항할 것이다. 어떠한 독선적 권위도 용납하지 않는 사회적 디엔에이 같은 것이 내재하고 있다. 그게 사회적 정의로서, 정의로운 행동으로 지금의 촛불은 아닐까?”
“내가 보기에 보수는 편견이 많고 진보는 이념이 과잉이다. 보수의 이기적 욕망 앞에 진보는 공허하게 보인다. 진보의 순수한 이상 앞에 보수는 지루해한다. 국민의 눈에 양자는 늘 대결하고 충돌한다. 그것도 아주 격렬하게 부딪친다. 그러나 국민의 눈에는 정치싸움이 본질을 꿰뚫는 것도 없다. 서민과 중산층이 갈급해 하는 대안과 희망은 없고 그저 자신들의 삶과 동떨어진 멀고 먼 언저리를 빙빙 맴돌고 있을 뿐이다.”
“보수도 업그레이드되어야 하고 진보도 혁신해야 한다. 보수는 수구꼴통, 즉 ‘꼴보수’의 비난을 넘어서야 한다. 극우 보수는 보수적 가치로 비추어도 위험한 것 아닌가? 진보는 급진과 과격의 이미지를 뛰어넘어야 한다. 극좌는 존재하지도 않겠지만 존재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적어도 ‘젊은 한국’은 이 정도는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그들이 패배한 것은 그들의 맨얼굴을 국민들이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모두 같지는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에게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살아 돌아온 험한 전사들 가운데서도 바다보다 넓고 깊은 마음씨를 가진 분을 가까이하게 된 것이다. 나에게는 유인태, 김부겸, 이인영이 그들이다. 모두 험난한 고난의 시기를 거쳤음에도 삶의 여백이 온전히 남아 있는 아름다운 남자들이다. 그들과 함께하면서 그들이 나와 다르지 않으며, 그들 역시 진정으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려는 치열한 고민을 하고 있음을 느꼈다.”
1. 미래 한국의 정치는 유연한 진보와 합리적 보수가 공존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나타나고 있는 대결 정치의 반복을 반드시 넘어서야 합니다.
촛불 현장에서 차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극명하게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맞섰지만 충돌하지 않았습니다. 해방 직후처럼 극단적 대결이 벌어지지 않은 이유가 뭔지 잠시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공존의 정치는 짧은 시간 안에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더 어려울 것입니다. 경쟁이 불가피할 것입니다. 그래도 멋진 경쟁, 품격있는 경쟁을 하면 좋겠다는 취지로 가끔 공존의 정치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2. 경청의 협치로 출발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일종의 정책 협치라고 할까, 부분적 수준이지만 거기까지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민생은 야당이 주도해도 좋다는 심정으로 빈자리를 내주고 싶습니다. 정부도 여당에 앞서 야당부터 소통해달라는 얘기가 그것입니다.
“정치 실종, 그것은 바로 자유민주주의 가치의 퇴보입니다. 문재인 정권 출범 후 우리 정치에서 타협은 찾아보기 어렵고, 오직 힘의 논리, 적대와 분열의 정치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정치 질서의 룰인 선거법마저 제1야당의 의견을 배제한 채 강행 처리하겠다는 것만큼 반정치적인 행위는 없습니다. 전임 정권을 부정하기 위한 보복 정치를 자행하고, 사법부, 선관위, 언론 등을 장악해 사실상 생각이 다른 세력을 억누르는 것, 그것은 사실상 공존을 거부하는 신종 권위주의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정치가 자유민주주의 정치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상대를 궤멸과 고립의 대상으로 여기는 적대 정치를 넘어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공존의 정치가 필요합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진리에 입각해 권력 분산을 위한 정치 개혁이 시급합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와 원내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18일 오후 서울 국회 의장집무실에서 열린 국회의장 주재 교섭단체 여야3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악수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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