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06.10 18:24 수정 : 2015.01.19 16:25

국내 첫 바둑 소재 영화 <스톤>의 남자 주인공 조동인이 노련하게 바둑 두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짬] 아버지 유작 ‘스톤’ 주연
영화배우 조동인

“받아 적어라. 내 아이디와 비밀번호다.”

두 아들은 아버지 장례를 치른 뒤, 숨죽인 채 아버지의 아이디로 접속을 시도했다. 그곳에는 아버지가 심혈을 기울여 쓴 영화 시나리오가 몇 작품 있었다. 영화를 향한 뜨거운 정열로 일생을 산 아버지의 귀중한 ‘유산’이었다. 아버지는 ‘다행히도’ 본인이 각본을 쓰고, 메가폰을 잡아 만든 영화를 한 편 세상에 남겨놓았다. 늦깎이 데뷔작이자 하나뿐인 유작이다.

12일 개봉하는 영화 <스톤>은 지난해 57살로 유명을 달리한 조세래 감독의 영화와 바둑, 그리고 아들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작품이다. 국내 첫 바둑 소재 영화이지만 바둑을 전혀 모르는 관객도 흥미롭게 볼 수 있다. 두뇌를 쓰는 바둑세계와 주먹을 쓰는 건달세계를 씨줄과 날줄로 정교하게 엮으며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맏아들 조현우(29)씨가 영화사 대표로 제작을 맡고, 둘째 조동인(25)씨는 배우로 출연했다.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주인공(안성기)의 아들 역으로 데뷔한 동인씨는 두번째 작품 만에 일약 주연으로 발탁됐다.

국내 첫 바둑 소재 영화

여러 영화제서 작품성 인정

고 조세래 감독 메가폰 잡고

두 아들 직접 제작·주연 맡아

“제2의 김수현? 나만의 색깔 원해”

“감독님은 저희 형제와 이야기하고 술 마시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했어요.”

동인씨는 아버지를 꼭 ‘감독님’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감독’의 카리스마가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다. 영화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부자들은 쉼없이 수다를 떨곤 했다. 동인씨는 “감독님은 친구와 약속보다 우리들과 같이 있는 것을 즐겼어요. 늘 영화와 바둑이 화제의 중심이었어요.”

바둑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기로 작정한 조 감독이 처음 주인공을 제의했을 때 그는 “부담스러워서 거절했다”고 했다. “하지만 바둑을 둘 줄 아는 젊은 남자 배우를 찾기 어렵다는 이유로 결국 맡기로 했죠.”

아버지 조 감독은 바둑광이었다. 아마 5단의 실력을 갖춰 한때 바둑교실을 운영하기도 했고, 10대 후반 이미 전국을 떠돌며 기원에서 사범을 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아버지에게 바둑을 배운 동인씨도 3급의 실력을 갖췄다.

“감독님은 내기 바둑을 좋아하셨고, 승률도 높았어요. 그래서 충무로에서 감독님은 술 잘 사기로 유명했죠.” 아버지의 유품 중 트로피가 하나 있다. 바로 ‘제1회 문화예술인 바둑대회 우승’으로 받은 것이다.

조 감독은 아들의 연기를 적극 지원했다. 고교 시절부터 대학로 연극단 ‘꼭두’에 나가 연기 수업을 한 아들을 위해 아버지는 학교에 찾아가 선생님께 ‘결석’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감독님은 영화 <대부>의 주인공 역을 혼자 연습하기도 했어요. 드라마 <왕건>의 주인공 성대모사를 하기도 했고요. 아마도 당신이 못한 배우의 길을 제가 가는 것을 원하셨나 봐요.”

동인씨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바바리코트 깃을 세우고 충무로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며 연기자의 꿈을 키웠다. 고교 2학년 때 무대에서 걷는 법부터 배우기 시작한 그는 희곡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그리고 등장인물 분석과 몸짓을 통해 인생을 투영하는 연습을 꾸준히 했다.

“감독님이 청년 시절 시나리오를 들고 영화사를 돌다가 영화사에서 일하던 어머니를 만나셨대요.” 조 감독은 영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1991·춘사영화제 각본상), <하얀 전쟁>(1992·대종상영화제 각색상) 시나리오 작가로 참여한 뒤 첫 바둑 영화 <명인>을 준비했으나 좌절한 나머지 한때 영화판을 떠나기도 했다. 대신 바둑 소설 <역수>와 그 개정판 <승부>를 쓰기도 했다.

아버지는 이번 작품에서 카메오로 직접 출연도 했다. 프로기사로 입문하지 못하고 건달세계를 넘보는 청년 백수 역인 아들 동인씨와 큰돈을 걸고 하는 내기 사기바둑의 파트너다. 그래서 아들은 영화를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마도 젊은 세대의 고민과 아픔 속에 당신의 인생에 대한 아쉬움과 바람을 담으려 하신 것 같아요. 영화에서 저한테 바둑을 배우는 건달 두목이 ‘만약 인생이 바둑이라면 처음부터 다시 두고 싶다’고 하는 대사가 있어요. 인생과 바둑은 순간순간 결정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같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바둑을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들 하잖아요.”

184㎝의 훤칠한 키와 잘생긴 외모로 ‘제2의 김수현’으로 불리는 동인씨는 그런 별명보다는 “저만의 색깔을 지닌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감독님은 포기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셨어요. 영화를 통해 저 같은 청년은 물론 선택의 기로에 선 모든 사람들에게 때가 되면 승부를 거는 용기를 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고요.”

영화계에서는 액션 신도 무리 없이 소화해낸 동인씨에 대해 “대형 신인이 출현했다”고 반기고 있다. 영화 <스톤>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스위스 로카르노국제영화제, 하와이국제영화제 등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함께 연기한 명품 조연배우 김뢰하(조직 보스)·박원상(조직 2인자)씨의 강한 캐릭터에 흡수되지 않고 주인공의 존재감을 살려낸 동인씨는 “1천만 바둑인구가 전폭적으로 지원해 대박이 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아마 감독님도 영화 개봉을 기뻐하실 거예요. 하늘나라에서….”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nihao@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