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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1.13 18:46 수정 : 2015.01.11 17:51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 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짬] 천주교주교회의 새 의장 김희중 대주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67·사진) 대주교가 13일 서울 명동 서울교구청에서 취임 첫 기자회견을 열었다. 광주대교구장인 김 대주교는 지난달 말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 비밀투표에 의해 강우일 주교의 뒤를 이어 의장으로 선출됐다. 10년간 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장으로 천주교를 대표해 국내 7대 종단 수장 모임에 참석해온 그는 부드러운 이미지답게 이해관계가 다른 종교 사이에서 화해자 구실을 해내곤 했다. 주교회의장 선출 직후 소감에서도 “조정자이고, 심부름꾼이고, 도구일 뿐”이라고 자신을 낮췄다. 그런데 그는 이날 국내 일간지 기자들을 모아놓고 “언론인들도 성직자들인데 성직을 잘 수행하고 있느냐”고 강단진 질문을 던졌다.

취임 첫 기자회견서 기자들에 질문
“언론인은 사회교육 책임진 성직자
편가르기보다는 약자 위한 철학을”

“격차 너무 크면 흡수통일도 불가능”
남북관계 개선·민간교류 지원 촉구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교육은 가정에서, 두번째는 학교에서, 세번째 사회교육은 언론에서 담당한다. 언론인들이 생계를 떠나서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고 있는가? 여론조사도 언론이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해야지 편향된 정보를 제공하고 하면 제대로 된 민심이 반영된 게 아니다.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는가.”

김 의장은 “우리 성직자들이 부모님을 잘 만나 공부해 이런 신분을 갖게 됐듯이 여러분들도 사회의 엘리트가 됐다”며 “그런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한 채 참혹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약자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언론철학을 지니는 게 혜택 받은 언론인이자 지성인의 몫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신학대 교수 시절 언론들이 얼마나 편파적인지를 보여주는 작업을 시도했던 경험도 들려줬다. 1987년께 특정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 뒤 과거 5년 전 또는 10년 전 각 언론들이 어떻게 다뤘는지를 분석하는 멕시코 잡지를 본떠 신학생들에게 국내 언론의 보도를 분석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 작업은 당시 안기부가 해당 학생에게 압력을 행사해 중단됐다고 한다. 그는 또 “편가르기를 하지 말라”며 이렇게 당부했다.

“천주교를 진보 인사, 보수 인사로 나누는데, 진보 쪽 99.99% 순도의 순금과 보수 쪽 99.99% 순도의 순금은 다르냐 같으냐. 둘 다 금이다. 순금은 어느 쪽에 있으나 진리다. 복음에 따라 진리와 양심을 선택하는 것이지, 진보나 보수를 선택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에 따라 성향은 다를 수 있지만 모든 신부들은 복음을 따른다. 큰 틀에선 교황청의 문헌들이 말하는 것도 명확하다. 이번 주교회의에서도 교황청 사회교리에 대해 더 열심히 공부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좋은 뜻을 가지고 함께하는 사람들은 동지가 아닌가. 우리는 형제다.”

그는 “정의구현사제단 때문에 교회가 갈리는 것 아니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광주에서 서울 갈 때 기차만 타고 가느냐. 버스도 타고 비행기도 탄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그는 또 “지난 8월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주교들을 꾸짖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러긴커녕 아주 따뜻하게 대해줬다”며 말을 구체적으로 전했다. “형제 주교들이라며 짐을 함께 지자고 했다. 교회 안에 머물지만 말고 아파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교회 울타리를 벗어나자고 했다.”

김 의장은 “교황의 말씀대로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 빈자와 사회적 약자들이 성당에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신앙의 보람을 느끼도록 배려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화해의 조정자답게 경색이 안 풀리는 남북관계 개선을 간절히 바랐다.

“통독하기 전 서독은 스위스은행에 어마어마한 돈을 예치해두고 동독에 얼마든지 빌려 쓰도록 했다. 배가 운하를 통과하려고 해도 앞뒷물의 수위가 맞아야 한다. 남북이 이렇게 차이가 나서는 흡수통일도 안 된다. 이념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너무 무리가 따른다. 그러니 더 나은 위치에 있는 쪽이 나눠야 한다. 정부는 원칙을 지켜도 민간의 교류는 도와야 한다.”

그는 “북에 ‘퍼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슬프다”며 “투자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일부 단체들이 북쪽 하늘에 대북전단(삐라)을 살포하는 것에 대해선 “변화도 못 시키고 남북관계만 경색시키면 얻는 이익이 무엇이냐”며 “작은 것을 얻기 위해 큰 것을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천주교가 왜 북한의 인권 실상에 대해선 비판하지 않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그는 “신부들 수백명을 총살하고 성당 수도원을 몰수한 북은 지구촌에서 신부가 없는 유일한 곳인데 어떻게 천주교가 민감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며 “다만, 민족의 화해와 평화와 공존을 위하고, 먼 장래를 봐서 어떤 것이 효과적인가를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 의장은 “술도 드시냐”고 묻자 “원래 개구쟁이여서 중학교 때 술 먹고 담배를 피운 적이 있다”고 소싯적 무용담도 전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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