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가 박종현씨.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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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전남 무안 도연요 도예가 박종현씨
30대 중반 도예학과 늦깎이 진학해 연고없는 몽탄에 버려진 축사 구해
빚은 찻잔에 기타·요가로 유유자적 쉰을 바라보는 나이, 그는 그 남다른 꿈을 이뤘다. 남들이 보기엔 보잘것 없을 지 몰라도, 그는 마음의 평온과 가난하다는 것의 기쁨을 즐기고 있다. 전남 무안군 몽탄면의 나지막한 야산 기슭에 스스로 지은 진흙집에서 도자기를 구으며 사는 도연 박종현(47·사진)씨의 아침은 명상과 요가로 시작한다. 일어나면 맨먼저 뜨락이 바라보는 수련 공간에서 중학교 때부터 혼자 익힌 요가를 한다. 한평 남짓한 요가 공간은 앞이 통유리로 트여 있어 시원하다. 본격적인 무예 수련은 하지 않지만 정신과 함께 육체를 수련하는 그만의 호사스런 공간이다. 비록 거문고는 아니지만 통기타를 친다. 혼자 교본을 사서 독학으로 배운 기타 실력이다. 코드를 누르며 어지간한 가요는 반주를 한다. 혼자 사는 고독을 버틸 수 있는 묘약이기도 하다. 마당의 작은 텃밭에는 상추같은 채소를 심어 반찬거리나마 자급자족한다. 싱싱한 야채는 가난한 선비의 밥상을 더욱 윤택하게 만든다. 마당에는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장작가마가 있다. 혼자 손수 지은 것이다. 뒤늦게 배운 도자기를 굽기 위해 주변의 황토를 모아 만들었다. 값비싼 도자기 작품이 아니라 정감 넘치는 다기를 빚는다. 30만원 남짓이면 충분한 한달 생활비를 벌어 들이는 수단이기도 하다. “가을 끝자락에 말라붙은 고구마 줄기를 문득 잡아당겼을 때, 실한 고구마가 한덩이 달려 나오면 뜻하지 않은 행복감이 휩싸입니다. 가난하고 초라해 보일지라도 내면에는 기쁨과 행복과 충만함이 주렁주렁 매달리는 그런 삶을 살고 있어요.”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그는 강경상고를 졸업한 뒤 단돈 만원을 쥐고 서울로 무작정 올라와 첫 직장 통신회사 말단사원으로 젊은 시절 10년을 보냈다. 반복되는 일상과 늦게까지 야근에 때론 밤샘 작업도 부지기수였다. 고민했다. “행복은 마음 속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욕망에 쉽게 무너져 내렸어요. 욕망은 바닷물을 마신 거와 같죠. 마시면 마실수록 더욱 더 갈증을 느꼈죠.” 어떻게 하면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 고민하던 박씨는 33살 때 직장을 그만두고 담양에 있는 전남도립대 도예과에 늑깍이 입학했다.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그제서야 그는 평생 도자기를 구우면 ‘가난한 선비’의 삶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적게 벌면 적게 쓰면 된다”는 생각을 하자 두려움이 사라지고 희망이 꿈틀거렸다. 4년만에 도예학교를 마친 그는 인도와 네팔로 여행을 떠났다. 3개월 간의 여정을 통해 무소유가 주는 행복을 더욱 절실히 느꼈다. 또 한 가지를 얻으려면 하나는 내려놔야 한다는 사실과 육지의 끝에는 바다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알게 해주었다. 직장생활 10년 벌이의 전부였던 전세 보증금은 중고차 한 대를 사고, 여행 경비를 쓰고나니 겨우 1500만원이 남았다. 그때 지인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사라고 권했다. 아무 연고도 없었다. 10여 가구가 있는 동네엔 노인들 뿐이었다. 마흔이 되던 해 3월 낡은 축사와 쓰러질듯 겨우 버티고 있는 폐가의 주인이 됐다. 돌을 나르고 흙을 담아 돌담을 쌓았다. 작은 작업실과 전시실, 그리고 한 번 배운 적도 없었던 장작 가마를 직접 지었다. 생활은 어려웠지만 무척 행복했다. 행복은 결코 외부적인 조건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나날이었다.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다는 사실에, 냄새 맡고, 맛을 보고, 느낄 수 있고, 하루 세끼 굶지 않고, 따뜻한 잠자리가 있다는 사실에 너무도 감사드려요.” 그는 “똑같은 거문고 소리를 들어도 누군가에게는 기쁨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슬픔이 되듯이 기쁨과 슬픔, 사랑과 분노도 오직 마음 한 자락에 달려 있어요. 행복과 불행은 바로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이 만든 질박한 찻잔에 따뜻한 차를 우려 마시며 박씨는 스스로 만든 행복에 웃음 짓는다. 무안/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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