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2.09 18:57
수정 : 2015.02.09 18:57
[짬] 다큐영화 ‘목숨’ 에세이집 내는 이창재 감독
“나는 지금 왜 살고 있는가?” 누구나 품고 있는 의문이지만 섣불리 꺼내 묻지도, 답을 찾아나서기도 어려운 질문이다. 이 무거운 실존적 화두를 영상으로 집요하게 추적해온 보기 드문 작가가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사이에서>(2006년) <길 위에서>(2013년) <목숨>(2014년)의 이창재(48) 감독이다.
신과 인간 사이에서 홀로 눈물을 감추며 살아가야 하는 무당의 세계, 삶의 진리를 찾아 ‘지금 이곳이 아닌 어딘가’로 홀연히 길을 떠난 비구니 수행자들의 세계, 삶의 끝에서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나는 호스피스 병동 환자들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 자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각각 무속·불교·가톨릭을 배경으로 삼아 ‘종교 3부작’인 셈이 됐다.
특히 지난해 11월 개봉한 <목숨>은 시사회의 호평과 관객들의 높은 평점을 받으며 각종 영화제에 초청받기도 했다. 하지만 독립영화 흥행 신기록을 날마다 갈아치우며 관객 500만을 향하고 있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 밀려 ‘목표치 5만명’에 만족해야 했다.
2006년 무당의 ‘시한부 예언’에 관심
호스피스 자원봉사 이틀만에 포기
지인들 죽음·어머니 의식불명 ‘절박’
2013년 ‘길 위에서’ 찍으며 불자 입문
“냉정한 시선 힘들어 마음 감옥 체험”
영화 흥행 아쉽지만 ‘삶의 긍정’ 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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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재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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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한테도 ‘죽음’은 오랫동안 도망다니던 주제였어요. 2006년부터 4수 끝에 겨우 대면을 한 셈입니다. 솔직히 ‘흥행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쳐 아쉽지만, 개인적으로는 ‘숙제’를 무사히 끝내 홀가분한 느낌입니다.”
“2006년 <사이에서>를 찍으면서 ‘만약 내게 남은 시간을 미리 알게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포천의 가톨릭 모현호스피스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는데 이틀 만에 간병하던 환자분의 임종을 보고 충격을 받아 그만뒀어요. ‘죽음’을 영화의 아이템으로만 접근했을 뿐 진정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었던 거죠.”
2004년부터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영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2008년 방학 때 스페인 산티아고 도보 순례길에서 또다시 삶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우연히 신문의 여행기사에 실린 ‘멋진 순례길 사진’에 꽃혀, 첫아이 출산 직후였던 부인을 남겨두고, 5일 만에 28㎏의 배낭을 꾸려, 충동적이면서 절박하게 떠난 길이었다. “마지막 종착점에 도착해서 보니 배낭에 남은 물건이 너무 많더라고요. 삶에서도 마지막을 미리 안다면 쓸데없는 집착을 버릴 수 있을 텐데… 자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귀국하자마자 청주에 있던 정토마을 호스피스를 찾아갔던 그는 역시 포기했고, 2010년에도 호스피스 요양원을 섭외했다가 그만뒀다. 그러다 2013년 ‘젊은 날의 첫사랑처럼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지만 가지 못했던 ‘출가’의 의문을 풀고자 <길 위에서>를 찍었다. 안식년 휴직 기간을 이용해, 일년에 두번만 개방하는 도량인 백흥암 비구니 스님들의 구도 생활을, 인근 허름한 암자에서 수행자처럼 자취하며 300일 동안 기록했고, 그 자신 ‘불자’로 입문하게 된 뜻깊은 작품이다.
“그즈음 ‘죽음’이 실존의 문제로 절박하게 다가오는 일을 연달아 겪였어요.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된 거죠.”
<길 위에서> 촬영 도중 두번이나 다치는 사고를 당해 한동안 ‘천장과 창문 밖 하늘만 바라보던’ 병상 체험을 했던 그는 영화 마무리를 할 무렵 중학교 때부터 절친과 형수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그 충격으로 쓰러진 그의 어머니는 지금껏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누워 있다고 했다.
“최대한 냉정한 시선으로 객관적으로 찍자고 다짐했지만 역시나 힘들더군요. 특히 임종 순간에, 가족들 위로부터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회의와 혼란으로 ‘마음의 감옥’을 겪어야 했어요.”
그 자신 무의식적으로 ‘몰입’한 나머지, 말기 환자로 독실에 누워 임종을 하는 생생한 꿈을 꾸며 환자들의 심정을 온몸으로 이해하게 되는 체험도 했다. 그런 만큼 <목숨> 개봉 이후에도 한참 동안 작품의 세계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그는 화면으로 보여줄 수 없었던 그 단상들을 내내 작업노트에 썼다. <길 위에서> 촬영기를 정리해 낸 데 이어 두번째 자전적 에세이집으로 조만간 출간할 예정이다.
이 감독은 “이 영화가 대중적으로 성공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임종을 대하면서 인생무상과 고뇌, 그리고 연민을 느꼈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삶이라면 죽음도 긍정적으로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소회를 남겼다.
한양대 법대를 졸업하고 신문사, 광고기획사, 다큐 전문 케이블방송 <큐채널> 등에서 피디로 일했던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 예술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2003년 졸업작품 <에디트>(EDIT)로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선정한 ‘세계 30대 다큐멘터리전’에 초청받기도 했다. 피디 시절 ‘대학생 출신 노동운동가 이야기’를 제작하면서 겪은 실화를 소재로 한 첫 작품은 국내 미개봉 상태다. 후속작부터는 ‘정치적 주제’를 구상 중이다.
글·사진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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