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팜 한국사무소 대표 지경영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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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옥스팜 한국사무소 대표 지경영 씨
한국전쟁 때도 고아·빈민 구제 지원
64년만인 작년 원조제공국으로 전환 오염수 즉석 정화해주는 ‘워터버킷’
배설물 담아 묻으면 썩는 봉지 ‘피푸백’
지난해 전세계 24개 현장서 맹활약 65년 전 한국전쟁이 터졌던 25일 만난 지 대표는 대뜸 물통을 집어들었다. 뚜껑이 있고, 아래쪽에 물꼭지가 있다. 14리터의 물이 담긴다. “긴급구호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깨끗한 물의 공급입니다. 이 물통의 뚜껑은 견고히 닫힙니다. 세균이나 불순물의 침투를 막아주지요. 아래로 향한 물꼭지 역시 편리함과 위생을 함께 보장합니다.” 옥스팜은 긴급구호 상황이 발생하면 이 ‘워터 버킷’과 함께 최대 9만리터의 물을 보관할 수 있는 물탱크를 3시간 이내에 구호 현장에 설치한다. 옥스팜이 특별히 개발한 이 물탱크는 조립이 가능하다. 이어 물을 운반할 수 있는 수로를 인공적으로 만든다. 쇠파이프를 조립해 물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나 물을 공급한다. 또 ‘라이프 세이버’라는 물통은 오염된 물을 담아 펌프질을 하면 안에서 정수가 자동으로 된다. 재난지역에서는 배설물 해결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지 대표는 “하루에 일인당 최소 0.5㎏의 배설물이 생겨요. 이 배설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각종 전염병 창궐의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옥스팜은 ‘피푸백’이라는 봉지를 마련했다. 이 봉지에는 화학약품이 내장돼 있어, 배설물을 담아 땅에 묻으면 자연에 함께 스며든다. 또 소독 기능이 뛰어난 비누도 위생키트에 담겨 배급된다. 모두 옥스팜 나름대로 오랜 연구를 한 특별한 긴급구호 물품이다. 이 물품들은 대규모 재난이 닥쳤던 인도네시아의 쓰나미, 아이티의 대지진, 파키스탄의 홍수, 필리핀의 태풍 피해, 아프리카의 에볼라와 네팔의 지진 현장 등에서 맹활약했다. 옥스팜은 지난해 세계 24개 긴급구호 현장에서 620만명에게 도움을 줬다. 지 대표는 “가난으로 절망에 빠진 이들이 원하는 것은 구호품만이 아니라 가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의”라며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책 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아프리카의 여성 권리 향상을 위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탄자니아에서 ‘여성 농부 영웅 만들기’ 캠페인을 펼쳤어요. 이 캠페인은 여성 농부 가운데 농작물을 많이 재배한 여성에게 상을 주는 것인데, 약 1만명의 농부가 투표에 참가합니다. 우승자에겐 태양전지판과 트랙터, 식량창고가 주어집니다. 여성이 존중받기 시작했어요.” 캄보디아에서는 새로운 쌀 재배 방식을 보급해 이전 비용의 70%만 들이고도 2배의 수확량을 거두는 효과를 보기도 했다고 한다. 옥스팜은 2018년까지 캄보디아 농민 100만명에게 새로운 쌀 재배 방식을 전수한다는 목표다. 한양대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지 대표는 미국에서 유학을 마친 뒤 광고홍보 분야에서 일했다. 9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국제 어린이 양육 단체인 ‘컴패션’에서 구호활동 경험을 쌓은 뒤 세계 5대 엔지오의 하나인 옥스팜 코리아 대표가 된 그는 “전세계 부자 85명의 재산이 세계 70억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가난한 이들의 재산을 합친 것과 비슷할 정도로 부의 불평등이 심하다”며 “가난의 불공정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1942년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기근’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만든 옥스퍼드 학술위원회에 기원을 둔 옥스팜은 100개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고, 민간후원금으로 운영된다. 지 대표는 “가난이 없는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옥스팜의 목표”라며 “실용적이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긴급구호에 임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손에 들린 물통이 더욱 견고해 보인다.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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