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노리 이명복 관장.
|
[짬] 제주 저지문화예술인마을 갤러리 노리 이명복 관장
30여년 만에 ‘민중미술 3인전’ 열어
‘4·3’ ‘비무장지대’ ‘권력과 국민’ 등 방송 제작차 방문했던 ‘저지’ 마을
한눈에 “확 돌아” 사표내고 정착
15년만에 탐라미술인협회원 ‘인정’ 피끓는 청춘이었던 이들은 어느덧 머리 희끗한 장년의 문턱에 섰지만 ‘정신’은 그대로였다. 이 관장은 ‘제주4·3’을, 송 작가는 ‘비무장지대’를, 이 작가는 ‘권력의 무게에 대한 국민의 태도’를 주제로 작품을 선보였다. “일부에서는 무슨 구태냐, 지나간 얘기를 또 하느냐며 이의제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아요. 80년대 민중미술 작가들의 현재 정신이 중요합니다. 그 분들이 따뜻한 풍경화를 그려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도 민중미술이라고 봅니다. 서울에서 활동했던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제주도에서부터 재미있게 하면 되지 않을까 해서 ‘민중미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됐어요.” 이 관장이 ‘민중미술작가 3인전’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다. 이 관장은 민중미술 쇠퇴의 요인으로 좋은 작가가 계속 나오지 않은 것과 ‘이제 끝’이라는 작가들 인식 자체를 꼽았다. 그는 “민중미술이 쇠퇴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미술이 민중미술이 됐고, 이를 소재로 조금만 생각해보면 해야 할 작업이 너무나 많다. 용어에 집착하다 보니 문제가 있었지, 민중미술은 사람 사는 곳에는 항상 존재하며, 삶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놓치고 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전시회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작가들이 동의하든 안하든 민중미술전으로 갈 거다. 젊은 시절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미술이고, 사회에 알려졌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하는 것이 정직한 표현이다. 자꾸 용어 자체에 함몰돼서는 안된다.” 이 관장이 제주에 정착한 것은 2010년 2월이다. 26년간 방송사 근무를 마친 뒤였다. 방송사 시절부터 그림을 계속 그려온 그는 늘 화가로서의 삶을 꿈꿨다. “2009년 5월 저지 문화예술인마을에 있는 현대미술관에서 세계문화유산 전시회를 기획한 적이 있어요. 그 전에는 제주도에 와도 방송 제작에 몰두해서 그런지 좋다는 생각 이외에는 별로 감흥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곳은 시내와 달랐어요.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나무들도 그렇고, 동네가 마음에 들었어요. 특히 신록이 푸르른 5월 제주도는 정말 아름다웠어요.” 그의 표현대로 한다면,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확 돌았다”고 했다. 서울에 올라가서 곧바로 사직서를 내고 저지 마을로 내려온 그는, 그해 12월 갤러리 노리를 개관했다. 지역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해마다 5월이 되면 ‘말’전을 기획했다. 한 학교에 100여명 안팎의 학생들을 초대해 말 그림을 그리게 하고 갤러리에 전시했다. “자녀의 그림을 보러 부모들이 자연스럽게 갤러리를 방문함으로써 지역사회와 예술이 함께 할 수 있게 되고, 아이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을 갖는 기회가 되고 있다”고 그는 환하게 웃었다. 이 관장은 한달에 한번 정도 전시 작품들을 바꾼다. 입소문이 나면서 찾는 예술가도 많다. “이곳은 열린 공간이다. 항상 문을 열어놓으니까 사람들이 드나들고 심심할 겨를이 없다. 서울의 평론가나 화가들도 찾는데 어떤 때는 귀찮을 정도로 많이 온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12월에는 주로 제주 출신들로 구성된 탐라미술인협회(탐미협) 회원이 됐다. ‘4·3’ 작품들이 호평을 받은 덕분이다. “외부인의 시각에서 나름대로 해석해서 그리면 제주도에 기여하는 의미도 있을 것 같다”는 이 관장은 “내년에는 좀 더 본격적으로 민중미술전을 기획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제주/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