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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07 18:57 수정 : 2020.01.08 02:06

[짬] 사진작가 류은규씨

사진작가 류은규(사진)씨의 <약사기억-춘천교도소 100년의 기억> 전시회가 오는 22일까지 춘천시 약사동 터무니창작소에서 진행된다. 터무니맹글 제공

“80년대에 사라진 춘천 교도소의 속살을 공개합니다.“

교도소 내부 촬영은 예나 지금이나 금기다. 1980년대 초반 대학에서 사진을 배우던 21살 청년이 서슬 시퍼렇던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 초기 이 금기를 깼다. 아치형 옥사 입구와 감방으로 들어가는 철제문, 죄인에게 주의시키는 경고문, 감방 안 목욕탕, 유신체제 때 문구인 ‘우리의 각오’ 등 당시 교도소 내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아냈다. 하지만 함부로 공개할 수는 없었다. 군사정권 시절이 끝나고 20대 청년이 환갑을 앞둔 사진작가가 될 때까지 고이 간직했던 옛 춘천교도소 내부의 모습이 지난 3일 공개됐다. 사진작가 류은규(57)씨의 <약사기억-춘천교도소 100년의 기억> 전시회로 오는 22일까지 진행된다.

‘청학동’ 사진 등 다양한 도전을 즐기는 류 작가에게도 교도소 사진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는 서울 출신이지만 춘천에 살던 큰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높은 담에 둘러싸인 춘천교도소에 호기심을 갖게 됐다. 마침 대학에서 사진을 배우던 1981년 교도소가 시 외곽으로 이전했다. 옛 교도소를 허물고 아파트를 짓는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는 사진으로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시 경비를 맡고 있던 분에게 여러 차례 찾아가 설득했어요. 절대 안 된다는 말에도 물러서지 않고 설득했죠. 결국 그분이 퇴직할 때까지 사진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겨우 찍을 수 있었죠.”

류은규씨가 찍은 옛 춘천교도소 모습. 류은규씨 제공

기회는 딱 3번밖에 없었다. 1982년 12월 한 차례, 1983년 1월과 2월 또 한 차례씩 경비의 묵인 아래 춘천교도소에 몰래 들어갈 수 있었다. 류 작가는 “몰래 들어온 거니 친절한 안내 같은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텅 빈 교도소 안에는 나밖에 없었다. 너무나 춥고 무서워서 빨리 찍고 나가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춘천교도소가 가진 역사적 가치를 자료로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이 없었다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춘천교도소는 근현대사를 지역 주민과 함께했다. 현재 위치인 거두리로 옮기기 전까지 70년이 넘도록 약사동을 지켰다. 1909년 경성감옥 춘천분감으로 지어진 춘천교도소는 1923년 서대문형무소 춘천지소로, 1946년 춘천형무소, 1961년 춘천교도소로 이름을 바꿨다. 역사적으로는 양구 출신 의병장 최도환(1851~1911) 등이 일제강점기에 투옥 중 순국했던 장소이며 미군정 때는 좌우익의 극한 대립의 장이기도 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투옥돼 수형 생활을 했다.

81년 춘천교도소 이전 소식 듣고
‘경비 묵인’ 아래 세차례 내부 촬영
“퇴직까지 공개말라며 허락해줬죠”
22일까지 춘천 터무니창작소 전시
“춘천교도소 얘기 단행본도 낼 터”

청학동 사람들 등 생활다큐사진 개척

사진작가 류은규씨. 김경애 기자

엄밀히 말하면 춘천교도소의 옛 모습을 담아낸 사진전은 이번이 두 번째다. 춘천교도소 건립 100돌을 맞아 2009년 류 작가가 서울 등에서 <100년의 기억-경성감옥 춘천분감>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연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춘천교도소에 관한 전시회인데 정작 춘천에선 제대로 열지 못했습니다. 이제야 제 자리를 찾아간 느낌이 드네요”라고 안도했다.

항상 아쉬움을 토로하던 그에게 꼭 10년만인 지난해 말 춘천 터무니맹글에서 다시 전시회를 열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터무니맹글은 옛 춘천교도소 인근인 약사동 인근에서 지역내 공간을 문화적으로 활성화하기 위한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일시정지시네마’와 ‘예술밭사이로’ 등의 단체가 만들었다.

류은규 작가는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으려면 사진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인근 주민들과 함께 옛 춘천교도소에 얽힌 얘기를 풀어내 단행본을 내려고 한다. 그동안 항상 부족하다고 느꼈던 빈틈을 채워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류 작가와 지역 주민들이 만나는 ‘작가와의 대화’는 오는 15일 오후 3시 전시회가 열리는 터무니창작소에서 진행된다. 터무니창작소는 한때 춘천의 중심이던 옛 도심 약사동에 있는 60여년 된 낡은 집을 새롭게 고친 33㎡ 규모의 공간이다.

1982년부터 교통편도 없던 지리산 오지 청학동 사람들의 생애사를 사진으로 기록해온 류은규 작가는 ‘생활다큐사진’이란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청학동에 이어 1993년부터는 항일운동 후손과 조선족에 대한 사료와 사진 기록에 전념하고 있다. 20여년간 청학동을 담은 사진집 <청학동>과 조선족의 과거와 현재를 담은 <조선족 100년사>도 펴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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