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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일 우리동네나무그늘협동조합 이사(왼쪽)와 정경섭 마포 민중의집 대표가 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 민중의 집에서 진보정치의 위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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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리포트] 진보정당 15년, 위기와 기회
진보정당 탈당했던 ‘평등파’ 정경섭 대표- ‘자주파’ 윤성일 이사 대담
30대를 고스란히 진보정당에 바쳤다. 정경섭(44) ‘민중의 집’ 대표와 윤성일(40) ‘우리동네 나무그늘 협동조합’ 이사는 각각 ‘평등파’와 ‘자주파’라는 다른 그룹에 몸을 담고 때론 같은 당에서, 때론 다른 당에서 활동했지만 서울 마포에 “진보정당의 뿌리를 내리겠다”는 꿈만은 놓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두 사람은 모두 ‘무소속’이다. 윤 이사는 2012년 비례대표 부정경선과 폭력 사태 등을 보며 “당과 국민보다 정파를 우선하는 문화에서 더이상 활동할 수 없었다”며 통합진보당을 탈당했다. 정 대표는 “진보정당의 현 상황에 지쳤고 지금의 진보정당이 못하는 다른 일에 더 전념하고 싶다”는 생각에 지난해 12월 노동당을 탈당했다. 이들은 또다른 방식의 진보정치를 꿈꾸고 있다. 이들에게 지난 10년의 시간과 진보정당은 어떤 의미일까?
정경섭 대표“2008년 분당 뒤 현장정치 어려워져
시장상인·비정규직은 지지정당 없어
저항과 대안 함께 가는 운동 필요” 윤성일 이사
“진보정당 위축됐지만
협동조합 등 대안운동은 확장
지역주민 위한 정치시스템 중요” 두 사람은 2004년 민주노동당에서 처음 만났다. 정 대표는 1998년 국민승리21 자원활동가로, 윤 이사는 학생운동을 거쳐 ‘진보정치’에 발을 들였다. 그들에게 2004년은 ‘장밋빛 시간’이었다. 원내 진출(10석)이라는 총선 결과 앞에서 두 사람은 ‘무상급식·무상의료·무상교육’이 곧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들떴다고 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내부의 평등파와 자주파의 권력 갈등이 시작됐다. 2006년 북한 핵실험과 일심회 사건 등으로 당 전체가 몸살을 앓을 때, 지역에서도 언성을 높이는 지난한 논쟁이 뒤풀이 자리까지 이어졌다. 평등파가 북한 핵실험과 3대 세습 등을 비판하면 자주파는 ‘북한의 특수성’으로 맞서며 평행선을 달렸다. 정 대표는 “서로 (입장이 좁혀지지 않아) 답답해 미치는 토론이었다. 성일이랑도 많이 싸웠고 결론 없이 헤어질 때가 많았다”고, 윤 이사는 “우리가 (합의가) 안 되는 토론을 하고 있구나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두 사람에게 2008년 민주노동당의 분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과 2011년 통합진보당 창당은 또다른 상처를 남겼다. 정 대표는 2008년 분당 이후 진보신당(현 노동당)에 계속 몸을 담았고, 윤 이사는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을 이어가며 다른 길을 갔다. 하지만 ‘동네정치’를 하는 이들에겐 노선 논쟁에 앞서 구정 감사, 비정규직 투쟁 연대 등 지역에서 함께 해야 할 일이 더 많았다. 정 대표는 “힘을 모아도 시원치 않을 판이었다”고 말했다. 당연히 ‘두 개의 정당’은 난감한 문제였다. 마포 지역에서 벌어진 홈플러스 비정규직 투쟁(2007~2008년), 강제 철거 문제로 관심을 모았던 홍대 두리반 투쟁 등을 지원할 때 정 대표는 진보신당 명함을, 윤 이사는 민주노동당 명함을 내밀었다. “갈라져 있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어색하고 어려웠다.”(윤) “지역투쟁 현장을 지원하는데 둘 다 어느 한쪽을 지지해달라고 하기 어려웠다.”(정) 하지만 두 사람은 “‘두 개의 명함’이 가진 차이가 지역 주민들에겐 의미가 없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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