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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6.21 13:44 수정 : 2015.04.29 16:36

드라마 <신사의 품격>, SBS 제공

[황진미의 TV톡톡] <신사의 품격>

<신사의 품격>은 40대 ‘꽃 중년’들의 사랑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다. 장동건과 <시크릿 가든>의 김은숙 작가가 만나, 동시간대 시청률 1위다. 반응도 호의적이다. “40대 남성들, 우리 사회에서는 그냥 아저씨이거나 일 열심히 하는 무성적인 성실남에서 캐릭터들이 벗어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이현승감독 트위터)거나, ‘불혹에도 철들지 않는 남성’이란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준다며 반기는 이들이 많다. 한편 김선영 문화평론가는 ‘90년대 신세대가 꿈꾸었던 미래의 라이프 스타일을 재현한 듯한 가상우주에 가깝다’며 비판했다. 동의한다. 그러나 이런 논의에서 반드시 지적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세대와 계급을 치환하려는 오류다.

<신사의 품격>의 신사는 서울 강남을 지역 기반으로 하는 부르주아·전문직 남성들이다. ‘꽃 중년’으로 불리는 이들은 세련된 패션 감각과 매너를 장착해 20대 여성들과 노닥거려도 추하지 않다. 8회에 방영된 박민숙(김정란)의 부부 동반 모임 장면은 이들의 때깔이 기존 아저씨들과 얼마나 다른지 극명히 대비시킨다. 이들은 1972년생으로, 서태지가 등장한 92년도에 대학을 다니며 X세대로 불렸다. 이들 세대는 학생운동의 퇴조와 대중문화의 만개를 겪었으며, 사회 진출 시기가 외환위기와 맞물리면서 세대간·세대 내 계급 격차가 급격히 벌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즉 사회 진출이 몇 년 빨랐던 386세대들이나, 같은 세대 내에서도 간발의 차이로 먼저 취업을 했거나 부모의 재력으로 강남에 아파트를 장만한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 사이의 간극이 무섭게 벌어져, 강남과 강북, 서울과 수도권, 수도권과 지방 사이에 천 길 낭떠러지가 생기는 걸 목도한 세대다. 당연히 세대간, 세대 내 계급적 위화감이 크다. 이들은 전문직과 일반직, 정규직과 비정규직, 부동산 소유자와 무주택자, 금융자산가와 신용불량자로 나뉜다. 386세대만 해도 명문대 출신이거나 전문직이면 비교적 균질한 중산층의 삶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후 진행된 양극화로 이들 세대는 전문직만으로는 중산층의 삶을 유지할 수 없으며, 부모의 재력이 절대적임을 안다. 드라마는 박민숙의 부동산과 임태산(김수로) 집안의 재력이 이들 삶의 기반이며, 유능한 건축가나 변호사도 비싼 임대료를 감당 못해 망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누구나 안다. 이들 세대 중 단 1%도 드라마 속 ‘꽃 중년’으로 살지 못한다. 그러나 99%가 이들의 풍요와 자유를 선망한다. 계급으로 찢긴 이들 세대가 공유하는 것은 오렌지족이니 X세대니 하는 추억의 세대명과 그 선망뿐이다. 드라마는 매회 추억의 장면들과 현재의 노닥거림을 프롤로그처럼 배치해 이들 세대의 문화적 동질감을 환기시킨다. 김도진(장동건)이 걸린 단기기억상실증이 시청자들에게도 일어나 계급적 위화감을 잠시 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오렌지족이니 야타족이니 하는 말도, 실은 계급을 세대의 이름으로 치환한 은폐술이었다. 영화 <건축학개론>이 보여주듯, 당시 어느 계급의 젊은이가 외제차를 타고 압구정동을 달릴 수 있었는지는 자명하지 않은가. X세대와 Z세대 등을 지나, 이 사회의 젊은이들을 ‘88만원 세대’라는 치욕의 이름으로 부르게 된 오늘날, 드라마는 다시금 40대 부르주아들을 ‘꽃 중년’으로 호명한다. 드라마 전체가 평행우주 판타지이지만, 계급을 세대로 치환하려는 발상이야말로 판타지계의 갑이다.

황진미/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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