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7.12 19:54
수정 : 2015.04.29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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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비에스(SBS) <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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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의 TV 톡톡
<짝>은 평일 심야에 방송되는 일반인 짝짓기 프로그램으로, 스타 없이도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출연자들이 인터넷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등 인기가 높다. 그러나 최근 4주간 방송된 ‘프로야구 8개 구단 특집’과 ‘말레이시아 특집’의 시청률은 저조했다. 이유가 뭘까? 프로그램의 본령을 망각한 기획의 당연한 귀결이다.
<짝>은 2011년 1월 <에스비에스(SBS) 스페셜> 신년 특집 기획을 거쳐 3월에 정규프로그램으로 첫 방송을 탄 리얼리티 쇼다. 10여명의 남녀를 1주 동안 ‘애정촌’에 합숙시키며 짝을 맺는 과정을 2~4회 분량으로 담는다. 이지적이고 간명한 내레이션은 ‘인류학적 고찰’을 수행중이란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출연자들은 이름 대신 ‘남자 1호’, ‘여자 3호’ 등으로 불리며, 입소 첫날엔 첫인상만으로 호감을 확인하고 다음날 자기 소개로 ‘스펙’을 공개한다. 가급적 선입견을 배제한 상태에서 호감이 형성되는 과정을 담으려는 것이다. 이성적 매력과 사회경제적 능력의 함수인 ‘사랑의 작대기’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출연자들의 감정은 끊임없이 동요한다. 시청자들은 이들의 선택과 변심을 지켜보면서 연애 심리의 원형을 발견하기도 하고 자신의 취향이나 경험을 반추하기도 한다.
<짝>에 대한 비판도 많다. 연애가 만연하고 결혼정보회사가 성업 중인 시대에 굳이 방송에까지 나와 짝을 찾으려는 출연자들의 의도를 의심하거나 시청자들의 관음증적 쾌락을 꼬집는다. 하지만 연애가 만연한 시대에도 여전히 짝을 찾지 못하거나, 개성의 다양화로 일반적인 매칭 시스템으로는 짝을 찾기 어려운 이들도 많다. <짝>의 설정은 짝을 찾으려는 출연자들의 심정이 절박할수록 가치가 있다. 선남선녀의 만남보다는 만혼자들이나, 연애 한번 못해 본 ‘모태솔로’, 이혼을 겪은 ‘돌싱’, ‘농어촌 남성’ 등 소수자 특집에서 각별한 진심이 느껴졌던 것은 이 때문이다.
최근 ‘프로야구 8개 구단 특집’과 ‘말레이시아 특집’은 이러한 의미에서 가장 벗어나 있다. ‘프로야구구단을 보유한 대기업 계열사에 다니는 출연자들’이란 설정은 남녀의 ‘스펙’을 회사원으로 균질화했다는 것 외엔 아무 의의도 없다. 대기업에 다니는 결혼 적령기 남녀가 왜 굳이 방송에서 짝을 찾는지도 의문이다. 출연자들은 기업을 대표해 나온 듯한 정체성을 띠었으며, 출연자에게 기업명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열혈 야구 팬도 아닌 이들의 야구장 데이트 장면이 반복되면서 기업 이미지 홍보 효과만 두드러졌다. ‘말레이시아 특집’은 ‘몸짱 클럽’이었다. 리조트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몸짱’ 남녀의 모습은 “애정촌의 존재 목적은 결혼을 하고 싶은 짝을 찾는 데 있다”는 ‘애정촌 제1 강령’과 멀어보인다. 비키니의 선정성이 문제가 아니라 프로그램의 본령이 망각된 게 진짜 문제다. 이국적 풍광과 미남·미녀로 볼거리를 주는 게 목적이라면 국외 관광지에서 20대 남녀의 10일 동안의 연애를 보여주는 <티브이엔>(tvN)의 <더 로맨틱>이 앞선다. <짝>이 개척했지만 놓친 미덕은 7월9일 처음 방송된 <제이티비시>(JTBC)의 <두 번째 로맨스, 꽃탕>이 보여줬다. 아예 만혼자와 ‘돌싱’으로 출연자를 한정한 이 프로그램은 경쟁의 긴장감은 덜고 구애의 진솔함을 강조했다. <문화방송>(MBC)도 유사 프로그램을 곧 출시할 예정이다. 유사 프로그램의 홍수 속에 <짝>이 원조로서의 가치와 위상을 지킬 수 있을까? 소수자성을 회복하고, 결혼할 짝을 찾는다는 본령에 충실할 때만 가능할 것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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