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 이러다간 ‘공주의 남자’ 되겠네

드라마 <마의>

황진미의 TV톡톡

<마의>는 조선시대 실존 인물 백광현의 삶을 그린 50부작 드라마로, <허준> <대장금> <이산> <동이> 등을 연출한 이병훈의 사극이다. <허준> <대장금>을 잇는 한방 메디컬 드라마이자, <이산> <동이>에 이어 신분을 뛰어넘는 입지전적 인물을 그린 드라마다. 백광현(조승우)이 노비인 마의(馬醫)에서 어의가 된 인물이란 점은 한방 메디컬 드라마와 신분 상승의 코드를 모두 충족시킨다. 여기에 ‘동물’과 ‘예기치 못한 로맨스’라는 새로운 코드가 추가된다.

<마의>는 <허준>과 <대장금>의 시각적 한계를 뛰어넘는다. 한방 치료가 약제나 침술을 위주로 하고, 유교적 인간관으로 외과적 시술이 꺼려진 탓에 한방 메디컬 드라마의 시각적 표현은 제한적이었다.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허준>은 스승을 부검하는 장면을 보여줬고, <대장금>은 초반의 요리와 마지막 제왕절개 장면을 통해

스펙터클의 상당 부분을 충족시켜주었다. 그러나 <마의>는 외과적 시술에 제한이 없다. 9회의 동물 해부 장면은 기존 한방 메디컬 드라마가 보여주지 못한 스펙터클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마의>는 백광현이 수의사인 까닭에 동물의 출현이 많다. 동물은 그 자체로 볼거리다. 광고계에선 동물·미녀·아기가 시선을 주목시킨다는 사실이 널리 활용된다. 더욱이 동물 치료 과정은 감동을 준다. 동물 관련 프로그램은 인기를 누리는데, <동물의 왕국>처럼 강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티브이(TV) 동물농장>처럼 인간과의 교감을 강조하는 경우도 인기가 높다. 1~2인 가구가 증가하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000만명에 이르면서 ‘동물과의 교감’은 새롭게 주목받는 감성 트렌드다.

<마의>의 신분 상승 코드는 강력하다. 1·2회에서 최고 명문가가 멸문되고, 양반과 천민의 아기가 뒤바뀌고, 거리의 아이에서 명문가 규수로 복권되는 신분의 롤러코스터가 시전되었다. 뒤바뀐 운명이라는 출생의 비밀을 품은 채 마의와 명문가 규수(이요원)의 로맨스가 진행중이며, 시청자들은 백광현이 마의에서 어의가 되리란 점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하찮아 보이게 만드는 일격이 있었으니, 바로 ‘공주의 사랑’이다. 자신의 고양이를 치료해준 백광현을 짝사랑하게 된 공주(김소은)는 급기야 그를 불러 ‘볼 키스’를 감행하는데…. 두둥! 신분질서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는 듯한 공주의 사랑은 400년을 뛰어넘어 완벽한 개인주의와 자유연애에 도달한 초현대적 멘탈리티를 보여준다. 본디 ‘개념 없는’ 공주는 주인공을 위험에 빠뜨리고 여주인공과의 멜로 라인을 흐트러뜨리기 때문에 ‘민폐 작렬’ 캐릭터로 시청자들의 미움을 받기 십상이지만, 공주의 사랑은 신선한 충격을 던지고 있다. 신예 김소은의 눈을 뗄 수 없는 매력과 캐릭터의 파격성이 더해져, 공주의 사랑은 전체 코드를 뒤흔들며 여주인공의 입지를 상당 부분 잠식하였다. 공주의 사랑이라는 초강력 스캔들은 드라마의 활기이자 위기이다. 말 꺼내긴 쉬워도 수습하긴 어려운 게 스캔들이다. 유야무야시키기엔 한껏 달아오른 시청자들의 마음을 배반하는 꼴이 될 터이고, 계속 키워가다간 ‘마의’가 아닌 ‘공주의 남자’가 될 판이다.

공주의 사랑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과연 어떻게 요리할지, 이병훈 연출가와 김이영 작가의 역량을 믿어본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