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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1.22 20:01 수정 : 2015.04.29 13:52

황진미의 TV톡톡

<코미디에 빠지다>는 10월10일 처음 방송된 <문화방송>(MBC)의 새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5회부터 방송시간을 금요일 밤 11시15분으로 옮긴 뒤 시청률이 상승하는 중이다.

<코미디에 빠지다>에서 눈에 띄는 꼭지는 박명수가 후배 코미디언을 가르치는 장기자랑 형식의 ‘거성 사관학교’, 고학력 실업 문제를 신랄하게 꼬집은 ‘두 이방인’, 재벌 2세가 가하는 모욕을 감내하는 직장인의 고충을 그린 ‘아가씨’,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허망함을 꼬집는 ‘신데렐라’, ‘루저’들을 위한 ‘정신승리법’을 설파하는 ‘최고야’, 군색해진 아버지의 위치를 풍자하는 ‘사랑은 붕붕붕’ ‘내가 니 아비다’ 등이다.

<코미디에 빠지다>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는 ‘먹고살기 힘들고,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에 대한 공감이다. ‘거성 사관학교’는 출연자들의 자기 반영성을 통해 이를 풀어낸다. 출연자들은 고정출연 기회를 잡지 못했고, 언제 프로그램이 폐지될지 몰라 불안한 자신의 상태를 코미디로 풀어낸다. “여러분 서울대, 연·고대, 가고 싶으시죠? 저 연세대 나와서 고시원에 살아요”라고 말하는 ‘개똑똑’의 자조성 발언은 깊은 페이소스를 남긴다. ‘하찮은 2인자’이지만 십수 년간 방송에서 살아남은 박명수가 후배들에게 성공 비결을 설파하지만, 매주 1등을 한 신인은 ‘박명수의 1:1 개그 과외’ 대신 장학금을 택한다. 선배에 대한 존경이나 미래를 위한 투자보다는 당장 쓸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화방송>(MBC)의 <코미디에 빠지다>
‘두 이방인’에서 두 박사는 논문에 대한 덕담을 주고받으며 “우리 같은 고학력자들에게 청년실업은 남의 나라 이야기지”라고 말하지만, 여기는 막노동을 하러 나온 현장이다. 그들은 일감 앞에서 지렛대의 원리니, 포드 시스템이니 하는 용어를 주고받다가 현장소장이 내쫓으면 “지금은 (일을) 해야 합니다”라며 답삭 매달린다. 여기는 ‘남의 나라’이고, 그들은 ‘두 이방인’이다. ‘아가씨’에서 회장직을 물려받은 아가씨를 수행하는 오 기사와 양 비서는 또 어떤가. 타자에 대한 어떠한 예의나 배려 없이 모욕적 언사를 툭툭 내뱉는 아가씨에게 그들은 복수하려 하지만 서로 말리느라 결국은 자해가 되고 만다. 그래도 말려준 덕분에 잘리지 않게 되었다면서 서로 고마워한다. 1%에게 가 닿을 수 없는 99%의 원한과 자기연민이 처연하다. ‘신데렐라’의 가난한 여성은 백마 탄 왕자님을 꿈꾸지만, 잘난 척과 말장난으로 일관하는 남자에게 번번이 실망한다. 88만원 세대에게 가해지는 희망 고문을 꼬집은 것이다.

‘사랑은 붕붕붕’의 차 뒷좌석에서 유치원생 딸과 철없는 입씨름을 벌이는 남자는 운전석의 아내에게 야단맞는다. 남자의 “난 이 집의 가장이야”라는 항변은 참 공허하다. ‘내가 니 아비다’의 고등학생 아들을 둔 아버지는 직장을 그만두고 귀농하거나, 전업주부를 하거나, 아들의 국외 연수비를 헐어 새 차를 사려 한다. 경쟁사회에서 지친 아버지가 자족적인 욕망으로 탈주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랑해’의 남자는 한껏 마초성을 펼치다, 결국 여자가 원하는 이벤트를 과하게 이루어준다. 남성 권력이 허세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웃프다’는 웃기면서 슬프다는 뜻의 신조어이다. 본래 희극은 비극의 한 종류라 하였던가. 신자유주의 시대의 99%가 품은 자괴감과 부질없어진 남성 권력의 비루함을 보여주는 <코미디에 빠지다>는 진정으로 ‘웃픈’ 코미디다.

황진미/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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