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3.14 19:51
수정 : 2015.04.29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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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완벽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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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의 TV톡톡
<그녀들의 완벽한 하루>는 <한국방송>(KBS) 2텔레비전 <드라마스페셜>에서 방영한 4부작 드라마로, 일요일 심야 시간에 방송됐는데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녀들의 완벽한 하루>는 강남 최고급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과 엄마들의 이야기를 스릴러 형식으로 보여준다. 일본 드라마 <이름을 잃어버린 여신>과 설정이 유사하지만, 한국 사회의 리얼리티가 생생한 질감으로 담겨 있다.
하나유치원 발표회 날, 무대에는 영어 뮤지컬 <미녀와 야수> 공연이 펼쳐지고, 미녀 역을 맡은 리나의 유창한 영어 노래에 리나 엄마는 눈물을 훔친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 도훈이 사라진다. 드라마는 매회 엄마들의 사연을 보여주며 미스터리를 증폭시킨다.
1부는 ‘워킹 맘’이었던 예린 엄마 이야기다. 일반 유치원에 다니던 딸의 재원 신청서 제출을 잊어버려 갑자기 아이를 보낼 곳이 없어진 예린 엄마는 사표를 내고 마침 결원이 생긴 하나유치원에 온다. 그러나 월 200만원의 원비도 부담이지만, 교육 의지로 똘똘 뭉친 다른 엄마들의 생각을 따라잡기 힘들다. 예린이는 영어를 못해 무시당하고, 상류층 아이들과 계층 차이를 절감한다. 본래 예린의 자리는 따돌림으로 사고를 당한 영지의 빈자리였다.
2부는 ‘텐프로’ 출신인 리나 엄마 이야기다. 리나가 발표회 주인공 자리를 놓고 예린이와 다투자 그는 모든 재원을 투하해 딸을 돕는다. 그러나 과거가 탄로나자 유치원을 떠나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딸의 공연을 보며 눈물짓던 참이다.
3부는 공부에 ‘올인’하는 하진 엄마 이야기다. 서울대 출신에 남편도 교수인 하진 엄마는 “살아남으려면 공부라도 잘해야 한다”는 신조로 ‘영재교육’에 매달린다. 월 400만~500만원의 교육비를 마련하느라 학원 브로커 짓을 하고, 자신도 과외를 뛴다. 그러나 하진이가 영지에게 밀리고 브로커 행위에 관한 소문이 돌자 영지 엄마에게 덤터기를 씌워 따돌림을 당하게 만든다. 그러나 하진 아빠가 집을 나가고 하진은 틱장애를 얻자 절망한다.
4부는 가장 부자인 도훈 엄마 이야기이다. 그는 월 500만원에 가정교사를 들이지만, 도훈이 가정교사를 더 따르자 분노하여 가정교사를 내쫓는다. 비즈니스로 맺어진 결혼 관계에서 남편은 늘 바람을 피웠고, 그 상처로 도훈 엄마는 가정교사나 리나 엄마의 과거에 대해 과민하다. 드라마는 도훈의 실종이 영지 엄마나 리나 엄마, 하진 엄마 또는 가정교사의 복수일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드라마는 ‘미친’ 교육 세태의 고발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불안을 예민하게 포착한다. 그들이 가장 공격성을 내보일 때는 자신들의 경쟁 논리가 무의미해지는 지점이다. 예린 엄마가 뮤지컬 주인공 역을 선선히 포기했을 때나 영지 엄마가 “6살인데 해봐야 얼마나 하겠어요”라고 말할 때, 그들은 자신들의 노력이 헛수고가 된다는 생각에 분노한다. 부모가 교육에 매달리지 않아도 아이들이 잘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 자기 존재와 가치를 부정당한 듯한 공포를 느낀다. 전업주부의 핵심 업무인 자녀 교육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관리자이자 기획자로서 자아를 실현하려는 이들의 절박한 인정 투쟁인 셈이다. 그들은 다른 가능성이나 예외를 믿지 않고, 오직 자신들이 믿는 그 논리 안에서 모두가 출구 없는 경쟁을 벌이길 원한다. 노 생큐. 자본이 만들어온 경쟁 체제를 믿지도 선망하지도 않으면서 “노 생큐”라 말하는 것. ‘미친 교육’의 마지막 줄에 서라고 유혹하는 자본에게 들려줄 가장 무서운 대답은 바로 “난 됐어”가 아닐까.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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