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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4.25 14:21 수정 : 2015.04.29 13:50

한국방송 드라마 ‘직장의 신’

황진미의 TV톡톡

<직장의 신>은 <한국방송>(KBS) 2텔레비전의 16부작 월화 드라마로, 노동과 고용에 대한 풍자를 담은 코믹드라마이다. 원작인 일본 드라마 <파견의 품격>에 비해 인물 묘사와 코믹 연기가 강화되고, 한국 상황에 맞는 각색으로 공감도를 높였다.

<직장의 신>의 ‘미스 김’(김혜수)은 정규직 월급의 3배를 받는 ‘슈퍼 계약직’으로, 점심 시간과 퇴근 시간을 ‘칼같이’ 지키고 회식에 참석할 땐 시간외수당을 받는다. 회사에 대한 소속감이 없으며,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피하기 위해 연락처도 남기지 않는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탁월한 업무 능력 덕분이다. 차 대접과 사무기기 수리 등 온갖 잡무를 도맡아 하는 건 물론이고, 러시아어 회화부터 꽃게 손질에 이르기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으로 회사를 위기에서 구한다. 계약 기간 3개월이 끝나면 회사의 계약 연장이나 정규직 전환 제의를 거절하고 외국으로 가서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다.

‘미스 김’은 신자유주의 노동시장의 포화를 뚫고 살아난 ‘터미네이터’ 같은 존재이다. 드라마는 첫 시퀀스의 노동쟁의 현장 폭발 장면을 통해 그의 과거를 암시한다. 신자유주의 노동시장은 어떤 곳인가. ‘스펙’이니 인적자원이니 하는 비인간적 용어를 사람에게 써가며 3개월마다 사람을 갈아 치우면서도 집단적인 조직 문화를 앞세워 ‘가족’이니 ‘동료애’니 하는 허위의식으로 노동자들의 꿈과 열정을 착취하는 곳 아닌가. ‘미스 김’은 스스로 이름을 지우고 익명의 존재가 되어, 고용계약서가 아닌 ‘사용설명서’를 내민다. 신자유주의 노동시장이 그토록 원하는 ‘최고의 업무 능력을 지닌 기계’가 된 것이다. ‘미스 김’은 신자유주의 노동시장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프로페셔널’이자, ‘글로벌한 전인’으로 거듭난 상상적 존재이다.

드라마는 장규직(오지호)과 정주리(정유미)를 통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실상을 보여준다. 3개월 계약직인 정주리(정유미)는 성과에 대해선 존재감이 없고 실수에 대해선 무한책임을 지는 소모품 같은 존재다. 드라마는 아파도 쉴 수 없고 임신하면 잘리는 비정규직의 설움을 보여준다. 또한 누구든 할 수 있다고 여기는 마트 계산원 일이나 지하철로 출근하기도 실은 ‘생활의 달인’이 되어야 가능한 일임을 환기시킨다. 장규직(오지호)은 위계적인 조직 문화에서 인정받는 엘리트로, 전인격을 걸고 회사에 충성한다. 그는 목회자처럼 직장의 은혜를 찬양하고, 싫든 좋든 회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존재로 자신을 규정한다. 드라마는 비정규직 노동 환경을 고발하는 동시에 정규직 조직 문화를 조롱한다. 즉 비정규직의 비참함을 보여주지만, 정규직을 선망하거나 대안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미스 김’의 목소리를 통해 “회사의 노예가 되는 것이 그리 좋은가” 반문한다.

‘미스 김’은 신자유주의 노동시장이 낳은 반어적 존재이다. 그는 신자유주의 노동시장의 명령인 ‘기계가 되는 삶’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여 자본주의 노동의 본령인 전인격적 착취에서 벗어나는 역설을 보여준다. 비록 ‘미스 김’과 김점순의 삶은 통합되지 않으며 간혹 쓸쓸함이 묻어나기도 하지만, 그는 비정규직 철폐나 정규직 전환을 목표로 삼는 노동자들에게 큰 시사점을 던진다. 노동 시간을 줄이고, 소비의 욕망을 제어하며, 개인으로서의 자아를 끊임없이 계발하여 전인이 되는 삶! 차라리 기계가 될지언정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는 ‘미스 김’이 알려준 대안적 삶의 모습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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