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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7.18 19:35 수정 : 2015.04.29 13:48

<꽃보다 할배>

황진미의 TV 톡톡

<꽃보다 할배>(사진)는 <1박2일>의 연출자 나영석 피디가 <티브이엔>(tvN)으로 옮긴 뒤 출시한 금요 예능프로그램으로, 7월5일 첫회가 방송된 뒤 화제에 올랐다. <꽃보다 할배>는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 네 ‘할배’들의 배낭여행을 담은 관찰 예능이다. 사실 스타들의 여행 소재 예능은 식상하다. <1박2일> <패밀리가 떴다> <정글의 법칙> 등에서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빠! 어디 가?>와 <꽃보다 할배>는 아이와 할배라는 역발상의 기획으로 성공하였다.

평균 연령 76살인 할배들에게 배낭여행은 힘들다. 그래서 짐꾼이 필요하다. <1박2일> 등에서 친근감을 높인 배우 이서진은 ‘걸그룹 멤버 두 명과 떠나는 여행’이라는 제작진의 말에 속아 짐꾼으로 합류한다. 들뜬 마음으로 공항에 나왔다가 할배들과 마주친 순간, 당혹해하는 이서진의 표정은 첫회의 백미였다. 더 이상의 속임수나 제작진의 개입은 없을 예정이지만, <꽃보다 할배>만의 재미가 기대되는 이유가 있다.

첫째, 할배들의 생생한 개성 덕분이다. ‘직진순재’니 ‘심통일섭’이니 하는 캐릭터는 수십년간 형성된 ‘아무도 못 말리는’ 그들의 개성이다. 할배들은 카메라를 의식하지도, 시청자나 제작진의 눈치를 보지도 않는다. 덕분에 리얼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 화면에 그득하다.

둘째, 노년이 전하는 색다른 감회가 있다. 신구가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 죽으면서도 오늘 본 잔상이 떠오를 것 같다”고 말할 때, 여행의 의미는 각별해진다. 신구는 에펠탑 앞에서 젊은이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신념을 밀고 나가라”는 소회를 전한다.

셋째, 노인이란 존재를 이해하게 한다. 이순재는 배낭여행을 해봤냐는 질문에 “6·25 때 쌀자루는 져 봤다”고 답한다. 배낭여행과 6·25라는 전혀 다른 계열의 단어가 여든살 노인의 생애사에서 만난다. 노인이란 얼마나 아찔한 역사적 존재인가. 그는 피란을 가듯 여행지에서도 홀로 진격한다. 성공한 노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성취 동기가 높은 유형으로, 그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다. 앞으로 사장, 교수, 부모 등으로 이런 노인을 접하더라도, ‘직진순재’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되지 않을까.

넷째, 내 노년을 생각하게 된다. 백일섭은 이순재보다 10살이나 어리지만, 무릎 통증으로 뒤처진다. 마지막에 웃는 자는 건강 관리에 성공한 사람이다. 신구는 홀로 여행하는 20대 여성에게, 기특하다거나 대견하다고 말하지 않고 “존경스럽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젊은이에게 삶의 태도를 배우려는 겸손한 노인이다.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 이순재의 건강과 신구의 겸양을 지닐 수 있을까.

다섯째, 고령화 사회를 숙고하게 된다. 이제 노인들은 과거와 전혀 다른 노년을 맞게 된다. 그들은 건강한 상태로 수십년간 동년배들과 함께 산다. 곧 712만명의 베이비붐 세대가 정년을 맞이한다. 부동산을 소유하고 높은 연금을 받는 노인도 있고, 여전히 현역으로 일하는 노인도 생길 것이다. 70살인 백일섭이 커피를 타고, 43살인 이서진이 심부름하는 모습은 곧 닥칠 고령사회의 단면이다. 젊은 세대들은 노동시장에선 은퇴하지 않는 노인들과 경쟁해야 하고, 사회적으로는 은퇴한 노인들의 연금을 감당해야 한다. 세대 투표의 경향은 강화되고, 자본과 권력이 젊은 세대로 이월되지 않은 채, 그나마 가장 유능한 젊은이만이 공고한 베이비붐 세대의 네트워크를 비집고 짐꾼 자리를 얻을 수 있다. 이제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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