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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31 19:35 수정 : 2015.04.29 11:40

<비밀>(한국방송2)

황진미의 TV 톡톡

<비밀>(한국방송2·사진)은 16부작 드라마로, 뛰어난 각본과 연기력으로 화제를 낳고 있다. <비밀>은 검사의 배신, 재벌 2세와의 사랑 등 신파의 설정을 지니지만 신파가 아니다. <비밀>은 미스터리를 활용한 스릴러의 긴장감과 현실 사회의 비밀을 폭로하는 사회극의 의미를 지닌다.

강유정(황정음)은 뒷바라지해온 안도훈 검사(배수빈)가 뺑소니 사고를 내자 대신 감옥에 간다. 강유정은 아이의 죽음, 아버지의 죽음, 화상, 빚, 실직 등 고통을 겪는다. 뺑소니 사고로 애인을 잃은 재벌 2세(지성)는 강유정을 괴롭히려 쫓아다니다 그와 사랑에 빠진다. 강유정은 그동안 자신을 불행에 빠뜨린 게 안도훈임을 알고 경악한다.

<비밀>에서 검사의 배신은 기존 신파극과 다르다. 신파극에서 검사는 최고의 신랑감으로, 배신은 부잣집 딸과의 결혼으로 그려진다. 이 과정에서 검사의 직업적 가치는 훼손되지 않는다. 그러나 <비밀>에서 배신은 검사의 직업 행위를 통해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검사라는 직업이 재조명된다. 검사는 부모가 기대하는 출세에도 못 미치고 정의 실현과도 무관하다. 돈 있고 힘 있는 자들과의 친분을 통해 경력을 쌓아야 하는 직업이자, 기껏 강유정 같은 약자를 밟을 수 있는 권력을 지닐 뿐이다.

<비밀>의 악인은 기존 신파극과 다르다. 안도훈은 다정하고 우유부단하며, 자주 운다. 이따금 돈과 권력을 지닌 자 앞에서 독설을 뱉기도 한다. 그런 그가 어찌 악인이냐고? <비밀>은 공판 장면으로 시작된다. 안도훈이 강유정에게 “피해자를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죄”라 말할 때, 그 말은 자신을 향한다. 그는 영혼을 증발시킨 채 ‘유체 이탈 화법’을 구사중이다. 물론 누명은 강유정의 선택이었다. 안도훈은 죄의식에 가득 찬 표정으로 그의 헌신을 받아들인다. 안도훈은 사고를 책임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아무것도 결단하지 않음으로써 도덕적 주체가 되기를 포기한다.

이후 여러 국면에서 강유정이 아닌 출세를 선택하고, 재벌 비호 변호사로 거듭나며, 자기 죄를 덮고자 악행을 저지르는 건 자아를 탈각한 자로서의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는 모든 상황에서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검사 옷을 벗은 건 재벌의 미끼를 물었다가 감찰을 받게 된 탓이지만, 그는 가난한 부모를 탓한다. 정의로운 검사를 꿈꾸었으나 자본에 빠르게 포섭되어간 그는 이 시대의 새로운 악인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선에 대한 관심은 있으나 의지가 없는 비겁하고 나약한 중간계급, 세계에 대한 인식은 있으나 자신에 대한 성찰은 없는 냉소적 지식인, 자신은 기득권층과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자본과 권력을 선망하는 개혁주의 정치인 등을 연상시킨다.

반면 강유정은 노동계급을 상징한다. 그는 항상 밝게 노동하며,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산다. 그가 누명을 쓴 것은 공동운명체인 두 사람의 미래를 위해 자신이 희생하는 게 낫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는 “내 꿈은 안도훈이 있어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안도훈과 헤어질 때도 “후회하지 않는다. 같은 상황이 와도 그리했을 것”이라 말한다. 강유정은 자기 믿음을 위해 스스로 결단하고 남을 탓하지 않을 만큼 의지가 강한 도덕적 주체다. 다만 그의 믿음이 잘못되어 있었다. 강유정은 안도훈이 중요한 국면마다 자신에게 비수를 꽂았음을 알고 완전히 달라진다. 노동계급의 이해를 대변하고 미래를 책임질 것이라 믿어왔던 중간계급, 지식인, 개혁주의 정치인들이 그동안 어떤 배신을 저질렀는지 알게 된다면 강유정처럼 각성할 수 있을까. <비밀>이 비밀스레 건네는 질문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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