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응사>)는 <티브이엔>(tvN)에서 방송하는 20부작 드라마로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응사>는 잘 만든 오락물이다. 로맨틱 코미디의 서사에, 시트콤처럼 매회 완결되는 구성을 지니고, 과격한 슬랩스틱과 사투리 경연으로 <개그콘서트> 못지않은 웃음을 준다. 다양한 카메오가 등장하고, 서태지와 부활 등 1990년대 음악의 적절한 배치와 내레이션으로 장식하는 마무리는 라디오 음악방송 같은 아늑함도 준다. 연애 감정은 풋풋하고 가족애는 찡하다. 배우들의 연기도 탄탄하다. 고아라, 도희, 정민 등이 구사하는 생생한 사투리와 자연스러운 생활연기는 감탄스럽다. 캐릭터들도 매력적이다. 속 깊은 경상도 남자와 다정한 서울 남자의 매력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도 있고, 억세고 강렬한 개성을 지닌 여성 캐릭터를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으로 삼은 것도 참신하다.
<응사>는 특정 세대의 기억을 호출하는 드라마다. 2001년 <친구>가 ‘386 세대’의 향수를 자극했듯, <응사>는 소위 ‘엑스(X) 세대’의 응고되지 않은 개인들의 기억을 집단기억으로 재구성하게 한다. 인터넷에는 “드라마가 담고 있는 재현이 맞는지” 고증이 넘쳐나고, 시청자들은 “누가 나정(고아라)의 남편이 될까?”라는 드라마의 질문에 응답하느라 단서를 모으거나 마음에 드는 인물을 응원한다.
그러나 위 두 질문은 허튼 질문이다. 정작 질문되어야 하는 것은 “왜 1994년인가?”와 “드라마는 무엇을 담고 있지 않은지”이다. 1994년은 분신 정국으로 들끓던 1991년과 외환위기를 맞은 1997년의 딱 중간에 위치한다. 문민정부 출범으로 민주화운동의 열기가 잦아들고, 서태지 등 대중문화가 만개한 때이다. 호황으로 임금이 상승하고 내수가 진작되어 인구의 70%가 자신을 중산층으로 생각하며 미래를 낙관했다. 정치적 억압은 완화되고, 경제적 위기는 아직 맞지 않은 ‘벨 에포크’의 시기. 드라마는 이때를 청춘의 낭만을 담을 최적의 시대로 호출하였다.
하지만 실제 1994년은 운동권 문화와 경찰 폭력이 남아 있었고, 강남의 형성으로 계급 격차가 막 벌어지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예컨대 1996년 봄, 연세대 95학번 노수석이 등록금 인상을 반대하고 대선 자금 공개를 요구하며 시위하다 사망했다. 그러나 드라마는 혼돈의 공기를 제거하고, 2000년대 이후 세대가 동경의 눈으로 재구성한 아름다운 90년대를 담는다. 드라마 속 세계는 실낙원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상실이다. 무엇을 잃어버렸나. 그때는 아직 명문대에 지방 학생들이 많이 진학했고, 대학에 공동체문화와 연대감이 있었으며, 계급 격차보다 문화 격차가 더 큰 화두였고, 취업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였음을 동경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94학번들이 졸업 직전에 외환위기를 맞아 청년실업에 내몰리게 된다는 사실을.
드라마는 무엇을 담지 않는가? 2013년 현재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구조를 지닌 이 드라마에서, 그들은 현재 중산층의 삶을 사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1994년에도 그들은 명문대생들이었고, 지방 유지의 자식이었다. 하지만 하나도 빠지지 않고 풍파나 두절 없이 말쑥한 중산층 차림으로 모이긴 쉽지 않다. 과거를 추억하는 건 죄가 아니다. 그러나 향수가 현실의 처연함을 지우는 마취제로 작용할 때 퇴행적 나르시시즘이 된다. 윤이형의 소설 <큰 늑대 파랑>에서 노수석이 죽던 날 시위대에서 빠져나와 타란티노의 영화를 본 연세대 95학번 네 명의 친구들은 십년 뒤 지리멸렬하게 살다가 좀비가 되기 직전 “우리가 뭘 잘못한 걸까” 묻는다. 섣부른 응답이 아닌 올바른 질문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관련 영상] ‘응사앓이’, 결말이 수상하다 <잉여싸롱#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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