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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1.23 20:12 수정 : 2015.04.29 11:39

황진미의 TV 톡톡

<정도전>(사진)은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의 일대기를 그린 60부작 정통사극으로, 현재 6회까지 방송되었다. 드라마는 원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사대부를 등용하는 등 개혁 정치를 이끌었던 공민왕이 노국공주의 사망으로 실의에 빠져 실정을 일삼는 것으로 시작된다. 정도전(조재현)은 목숨을 걸고 상소를 올려 공민왕에게 국정 쇄신의 약속을 받아낸다. 그러나 왕실 스캔들을 이용한 권문세족 이인임(박영규)의 간계로 공민왕은 호위무사에게 살해된다. 이인임은 어린 우왕을 왕좌에 앉히고, 최영을 이용해 사대부들을 누른 뒤 정도전을 귀양보낸다.

드라마 속 신진사대부들과 권문세족이 맞서는 모습은 현실 정치의 측면에서 낯설지 않다. 그들은 학파가 다르고, 출신 계급이 다르며, 외교 노선이 다르다. 정도전 등 신진사대부들은 신념에 따라 움직이지만, 노회한 이인임을 이기지 못한다. 이인임은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기막히게 알아내서 상대를 자기편으로 만드는 지략가이다. 우왕의 왕위 계승을 망설이는 대비에게 최영의 독립적인 움직임을 위협의 빌미로 써먹고, 반원 자주파인 최영에게 균형 외교를 설명하며 원나라와 화친해야 오히려 자주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득하는 모습은 소름 끼칠 정도다.

정도전은 왕을 통한 개혁에 희망을 품었다가 좌절하고, 권문세족에 맞서 좌충우돌을 벌이다가 패퇴한 뒤 귀양지에서 기층 민중을 만난다. 개혁 정치가로서 그는 친명 정책이 백성을 위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백성들의 삶은 누가 왕이 되고 어디와 화친을 맺든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성리학자로서 그는 불교와 미신을 배격하는 합리적인 유교의 사유가 옳다고 확신했지만, 백성들에게 종교는 필요로서 요청되는 것이었다. 정도전은 9년간의 유배 생활을 통해 현실 정치의 틈새에서 개혁을 꿈꾸었던 한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 질서를 창안하게 된다. 드라마 도입부는 “좀 더 빨리 깨달았어야 했다. 하늘은 오래전에 고려를 버렸다”는 정도전의 내레이션과 함께 그가 함경도 국경 지대로 이성계를 만나러 가는 것이었다.

조선 개국은 단순히 왕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士)과 관료(大夫)들이 세습 귀족에 의해 장악되었던 시스템을 뒤엎고 중앙집권적 관료 체제를 도입하는 혁명이었다. 위화도 회군으로 정국 주도권을 쥔 정도전은 토지 개혁, 한양 천도, 사병 혁파 등을 통해 권문세족들의 기득권을 무너뜨리고, <조선경국전>과 <경제문감> 등을 통해 새로운 국가 시스템의 설계도를 그렸다. 정도전이 꿈꾼 나라는 모든 토지가 나라에 귀속되고 사람 수에 따라 토지를 지급받으며, 제도와 신하에 의해 왕권이 견제를 받고, 민생이 정치의 중심에 되는 나라였다. 이는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다음이고, 군주는 가장 가벼운 것이다”라는 맹자의 혁명 사상에 따른 것이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말이 있듯이, 사극은 현실 정치를 강하게 투영하는 매체다. 2000년대 들어 정조 등 개혁 군주에 대한 열망을 불어넣은 사극이 유행했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가짜 왕이 펼치는 새 정치를 통해 대선 직전 관객들의 열망과 공명하였고, <관상>은 무도한 세력의 권력 찬탈을 알면서도 막을 수 없었던 회한을 그리며 박근혜 정권하의 관객들과 소통하였다. <정도전>은 새로운 왕이 아닌 새로운 체제를 꿈꾼다. 낡은 것은 사라졌으나 새로운 것은 아직 오지 않은 지금,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도전의 말은 비상한 울림으로 용기와 상상력을 자극한다. 다시, 혁명을 꿈꿀 때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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