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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2.20 19:30 수정 : 2015.10.23 14:54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한 장면.

황진미의 TV 톡톡

<슈퍼맨이 돌아왔다>(<슈퍼맨>·사진)는 <한국방송>(KBS) 2텔레비전 육아 예능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추석에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방송된 뒤 11월에 정규 편성돼 100일 만에 동시간대 시청률 1위에 오르는 등 인기를 얻고 있다. <슈퍼맨>은 <아빠! 어디가?>(문화방송)의 모방품이라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나름대로 ‘원작’의 한계를 파고든 기획이다. <슈퍼맨>은 ‘원작’이 아빠 육아를 여전히 일상이 아닌 이벤트로 제시한다는 점에 의문을 품는다. 곧 아빠 육아가 저출산 시대에 요청되는 당위이자 아빠와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추구되어야 할 가치라면 왜 여행이라는 예외적 방식을 통해 실현돼야 하는가? <아빠! 어디가?>는 아빠 육아라는 화두를 텔레비전 예능으로 불러들인 선구자지만, 일상적으로 아이를 돌보는 아빠가 아니라 ‘캠핑 가는 아빠’라는 또 하나의 소비자본주의적 기획물을 낳는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아빠 육아의 본질을 보여주기 위해선 아빠와 아이가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떠나고 남은 집에서 아빠와 아이들의 일상을 관찰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슈퍼맨>은 2주에 한 번씩 48시간 동안 엄마가 집을 비우고 아빠가 온전히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을 보여준다. 미션은 제작진이 아니라 아내가 주고 간다. 출연진의 이미지와 상반된 모습에서 빚어지는 역설이 재미를 더한다. 추성훈은 야수 같은 이미지의 격투기 선수지만 딸의 발 모양을 제 발에 문신으로 새기고 베이비 마사지 자격증을 딸 정도로 극진한 ‘딸바보’다. 추성훈 가족은 ‘최강 비주얼’을 자랑한다. 아빠는 근육질의 패셔니스타이고, 엄마는 세심하고 상냥한 미녀이며, 딸은 귀여움과 ‘먹방’의 ‘종결자’다. 이들은 시청자의 눈길을 잡아끈다는 ‘야수-미녀-아기’가 결합된 ‘3B 완전체’다. 추사랑은 만화 같은 얼굴에 표정이 풍부하고, 선택적 낯가림과 놀라운 식탐으로 눈을 떼기 어렵게 만든다.

이휘재는 20년간 ‘이바람’으로 불릴 만큼 ‘연애남’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늦장가를 간 뒤 쌍둥이 아빠로 악전고투하는 모습에서 묘한 감흥이 일어난다. 파일럿 방송에서 그는 화려한 행사장에 기저귀가방을 메고 나타나 즐비한 미녀들과 마주쳤다. 아내의 육아를 거들 땐 ‘육아의 신’을 자처했지만, 홀로 육아를 맡게 되자 하루 만에 응급실 신세까지 져가며 눈물을 쏟는다. 아들을 안아준 적도 없다는 이휘재의 아버지는 “너 낳고 술값 많이 냈다”는 말로 아들에 대한 사랑을 갈음한다. 불과 한 세대 전의 아버지상이 이렇게 멀다. ‘친구 같은 아빠’라는 장현성도 아이들을 위해 난생처음 밥을 짓는다. 나름 예술가인 타블로는 아빠보다 더 뚜렷한 자기 세계를 지닌 딸을 위해 얼음물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는다.

예능을 점령한 육아 프로그램들은 한편으론 엄마에게 전담됐던 육아를 아빠를 비롯한 다른 구성원들에게 나누기를 촉구하는 사회적 순기능을 지닌다. 다른 한편으론 저출산의 사막을 걷는 불임의 주체들에게 신기루를 비추는 환등기로 작용한다. 사회경제적 여건으로 인해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이혼을 넘나드는 사람들에게, 텔레비전 속 중대형 아파트에서 아이들과 뒹구는 삶은 ‘천장에 매달린 굴비’와 같다. 굴비가 침을 분비시켜 맨밥을 삼키게 하듯, 텔레비전 속 아이들은 행복 호르몬을 분비시켜 팍팍한 현실을 삼키게 한다. 케이블 방송에 나온 이혼한 허지웅의 집 냉장고에 붙어 있는 추사랑의 사진들은 육아 프로그램의 효용을 단적으로 웅변한다. 어쩌면 아이들의 재롱은 저출산의 시대에 가장 사치스러운 볼거리인지도 모르겠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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