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3.27 19:31
수정 : 2015.10.23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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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 코너 ‘안 생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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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의 TV 톡톡
요즘 <개그콘서트>(<개콘>·한국방송2)에서 가장 잘나가는 꼭지는 ‘끝사랑’이다. 중년의 사랑을 그린 이 콩트에는 점잖은 커플, 이와 대조적으로 화끈한 애정 표현을 하는 커플이 등장한다. 화끈한 커플은 느끼하면서도 귀엽고,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정사장님’으로 불리는 남자는 안정된 자영업자로 보이며, 둘은 과격한 스텝을 밟으며 함께 만리장성에 오를 만큼 정력도 좋아 보인다. 이들은 망설임 없이 “이게 사랑이야~”를 외치며 사랑을 확신한다.
반면 청춘 남녀의 사랑은 미온적이다. <개콘>의 ‘두근두근’은 친구인 척 사귀고 있는 선남선녀를 비춘다. 이들은 사랑을 털어놓지 못하는데, ‘갑돌이와 갑순이’를 보는 듯한 복고적 정서가 웃음의 포인트이다. 그런데 꼭지가 진행되면서 이들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상태이지만, 관계는 진척되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이들이 연애를 유보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확신의 부족으로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이들이 함께 친구의 결혼식이나 개업식에 가서 부러움을 표하는 장면에선 그러한 의구심이 더욱 강해진다. 선남선녀의 지연되는 연애는 <코미디 빅리그>(티브이엔)의 ‘10년째 연애 중’에도 등장한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10년째 연애만 하는 동안, 여자의 외모 가치는 급격히 하락하고, 연애는 그냥 ‘먹고 사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콩트는 엄청나게 비대해진 여자가 먹는 것을 가장 밝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웃음을 유발한다. 낭만적 사랑은 휘발되었지만, 남자는 여자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며 둘의 관계는 정으로 유지된다.
그나마 이것도 선남선녀였기에 가능한 경우인지 모른다. <개콘>의 ‘놈놈놈’은 예쁜 여자와 평범한 남자가 데이트를 할 때마다 남자의 우월한 친구들이 나타나 여심을 녹이는 것으로 웃음을 준다. 여기서 친구들은 여자의 무의식적 욕망을 보여주는 판타지이다. 곧 자본이 주입한 잘난 남자에 대한 환상이 둘 사이를 계속 방해하는 것이다. 여자는 연애를 하면서 자본주의적 환상을 불러들여 끊임없이 현실과 비교하는 중인데, 이들의 데이트가 번번이 실패하듯 둘의 관계는 근원적인 불가능성을 지닌다. 가장 끔찍하고 신랄한 이성애의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은 <코미디 빅리그>의 ‘썸&쌈’이다. 잘생긴 경영자 남성과 늘씬한 미녀 사이에선 ‘썸’(연애)이 성립되지만, 평범한 남성과 못생긴 여성 사이에선 ‘쌈’(싸움)이 발생한다. 여자는 직장 동료 남성에게 이성애적 착각을 품지만, 남자는 연애 감정은 고사하고 공격성과 혐오를 드러낸다. 남자는 마치 이주노동자를 대하듯 여자를 대하는데, 이는 과거 남성들이 우월감에서 비롯된 아량을 보여주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남자는 생존에 내몰린 존재로, 하급 경쟁자인 여성으로 말미암아 불이익을 당하거나 직장 생활이 위태로워지는 것을 참을 수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연애 질서에서 가장 비참한 처지를 보여주는 것은 역시 <개콘>의 ‘안 생겨요’(사진)이다. 아예 연애 기회를 박탈당한 남성들의 하소연을 들려주는 이 콩트는 ‘부농’(연애의 빛깔 분홍에서 파생된 신조어. 연애, 혹은 연애하는 사람) 대 ‘빈농’(연애를 못하는 사람)이라는 위계적 계층 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언제나 가장 잔인한 현실의 거울이었던 코미디 속에서 중년의 사랑은 만개하는 반면 청춘의 사랑은 시들어간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마지막 행은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이다. 경제적 자립의 기회를 빼앗긴 청춘들은 이제 연애의 권리조차 빼앗긴 걸까? 오 세상에, 봄을 빼앗긴 청춘이라니!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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