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5.01 19:41
수정 : 2015.10.2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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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젤 아이즈>(에스비에스 토·일 밤 9시 55분) 속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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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의 TV 톡톡
<엔젤 아이즈>(사진·에스비에스 토·일 밤 9시55분)는 첫사랑이자 유사남매가 된 연인의 재회로, ‘멀쩡한 약혼자’ 대 ‘첫사랑의 연인’이 삼각관계를 이루는 주말 멜로드라마다.
터널 사고로 엄마와 시력을 잃은 윤수완은 3년 뒤 힘들게 장애에 적응하여 천문대 아르바이트를 한다. 사고 때 순직한 구급대원의 아들 박동주는 천문대에서 희롱당하는 수완을 돕다가 사귀게 된다. 동주 어머니가 뺑소니 사고를 당해 병원에 실려 오고, 원장인 수완 아버지는 각막기증을 받을 사람이 수완임을 알고 갈등한다. 동주 어머니는 죽고, 동주는 여동생의 치료를 위해 급히 미국으로 떠난다. 12년 뒤 원장의 도움으로 미국 의사가 된 동주는 한국에 돌아와 구급대원이 되어 있는 수완을 만난다. 그러나 아버지처럼 따랐던 원장이 수완의 친아버지이며, 수완에게 약혼자가 있음을 안 동주는 떠나려 한다. 하지만 동주도 자신을 그리워했음을 안 수완은 동주를 붙잡는다.
드라마 초반에 가장 눈길을 끈 점은 여주인공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설정이었다. 그러나 장애는 첫사랑 시절에만 존재할 뿐, 각막이식으로 2회 만에 사라진다. 첫사랑의 간절함을 강조하기 위해 드라마가 장애를 이미지로 활용한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사실 각막이식은 전맹인 장애인을 구급대원이 될 수 있을 정도로 고치는 완벽한 치료법도 아니고, 몇 년간 이식만을 기다릴 정도로 유일한 치료법도 아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각막이식 한방으로 장애를 마법처럼 제거하는데, 여기에는 장애를 의학적으로 제거해야 할 문제로 보는 잘못된 장애인식이 존재한다. 이러한 관념은 원장의 행위를 통해 더 극적으로 표현된다.
원장은 사고 뒤 장애와 엄마의 죽음으로 충격에 빠져 있는 딸을 두고, 차마 딸을 볼 수 없다며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 수완은 결국 장애를 받아들이지만, 그것은 ‘엄마를 죽게 한 벌’이라는 죄의식에 의한 거였다. 수완 아버지는 딸의 장애를 없애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잘못된 욕망에 이끌린다. 그 죄책감으로 동주에게 아버지 역할을 해준 것은 그나마 양심적이지만, 한국에 온 동주에게 떠나라고 종용하는 행위는 여전히 분열적이다. 자신의 죄가 없었던들 각막기증자가 동주 어머니라는 사실이 수완에게 받아들여지기 힘든 일도 아니건만, 그는 ‘딸의 정상적인 행복’을 위해 동주에게 함구한 채 떠나라고 말한다. 딸이 가장 힘들었을 때 장애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 부모의 역할을 방기했던 아버지가, 딸의 장애를 없앤다며 죄를 짓고, 또 딸의 ‘정상적인’ 행복을 위한다며 딸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랑을 박탈하려 한다. 어쩌면 그는 딸의 행복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딸의 ‘정상적인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세상의 허다한 아버지들의 모순을 그대로 보여주는 인물인지도 모르겠다.
한편 드라마는 그와 대조적인 인물도 보여준다. 동주 어머니는 아들이 데려온 수완의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반찬 순서를 일러주고 “네가 얼마나 예쁜지, 네 곁에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여주고 싶다”며 자존감을 높인다. 장애를 제거해야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장애와 더불어 관계의 존중을 통하여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장애는 의학적으로 제거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배려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수완이 동주를 못 잊는 것은 연애감정뿐만이 아니라, 엄마를 잃은 뒤 처음으로 맛본 가족의 정 때문이었다. 나의 자녀에게 또 남의 자녀에게,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 드라마가 묻는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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