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5.15 19:01
수정 : 2015.10.23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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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이방인>의 한 장면. 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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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의 TV 톡톡
<닥터 이방인>은 탈북 의사가 주인공인 의학 드라마로, 20부 중 4부가 방송되었다. 드라마는 1994년 북핵 위기에서 출발한다. 북한의 핵확산방지조약 탈퇴로 한반도는 전쟁 위기에 휩싸인다. 미국이 북한 핵시설을 폭격하면,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여 전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남한 정치가 장석주는 김일성의 사망이 미국의 폭격을 불러올 거라 판단하고, 남한 최고의 심장수술 의사 박철을 북한에 보내 김일성의 수술을 집도하게 한다. 박철의 아들 훈도 북한으로 보내져 인질이 된다. 다행히 수술에 성공하여 김일성이 미국 특사를 만남으로써 전쟁 위기는 사라진다. 하지만 박철 부자는 남한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장석주는 이들의 송환을 막고, 박훈의 엄마까지 제거한다.
박철은 북한에서 의사로 살며, 훈을 평양의대에 보낸다. 훈이 의대에서 사귄 재희는 가족과 함께 수용소로 끌려가고, 훈은 기밀의학연구소에서 온갖 생체실험을 하며 천재 의사로 길러진다. 5년 뒤 마루타로 온 재희를 수술하여 살린 훈은 재희와 함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망명을 시도하다, 혼자 남한에 온다. 영세한 의사로 살며 수용소에 있는 재희를 탈출시키기 위한 돈을 모으던 훈은 아버지가 일하던 대학병원에 갔다가 신묘한 수술 솜씨를 보이고 취직하게 된다. 그곳에서 훈은 재희와 꼭 닮은 의사를 보게 되는데….
<닥터 이방인>은 이질적 요소가 섞인 혼종 드라마다. 제목이 보여주듯, 탈북자라는 설정이 품은 사회적 요소가 천재 의사라는 설정이 품은 의학 드라마적 재미와 잘 섞여 있다. 그는 남한에서 태어났지만 정치권력에 이용당해 북한에서 자라게 된 체제의 희생자이고, 사랑 때문에 목숨을 건 탈주를 감행한 로맨티시스트이고, 남한에서 탈북자라는 이유로 멸시받는 소수자다. 또한 그는 북한이라는 알 수 없는 곳에서 길러진 천재 의사로 환자를 살리는 능력자다. 그의 캐릭터가 지닌 요소들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최신 트렌드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동창생>, <용의자> 등이 흥행한 이유는 북한이라는 이질성을 장르적 재미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이들 영화에서 북한에서 온 주인공들도 체제의 희생자이자 가족애가 들끓는 남자이고, 남한에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이자, 천재적인 신체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닥터 이방인>은 위 영화들보다 나은 측면이 있다. 첫째, 완전히 장르화되지 않은 현실 사회적 질감을 지닌다는 점이다. 위 영화들은 남북한의 전면적인 대립은 생략한 채, 북한 내부의 자중지란을 갈등의 핵으로 삼는다. 그 결과 북한은 현실적 긴장관계에 놓인 국가가 아니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테러집단으로 묘사된다. 반면 <닥터 이방인>은 1994년 북핵 위기와 북한과의 물밑협상을 자신의 정치적 기반으로 삼는 남한 정치가를 보여줌으로써 북한을 외교적·군사적 길항관계에 놓인 국가로 보이게끔 한다. 또한 탈북자에 대한 편견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난 공산당이 제일 싫어.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쳐온 놈들. 돈에 환장한 쓰레기”라는 대사는 탈북자가 겪는 삼중의 차별을 함축적으로 말해준다. 그들은 빨갱이이거나 배신자이거나 천민으로 배척된다.
둘째, 가족신파가 아닌 로맨스를 택했다는 점이다. 자기함몰적인 가족서사가 아니라, 밖으로 뻗어가는 연애서사를 통해 앞으로 남한에서 얽히게 될 관계의 가능성이 무한히 확장된다. 부다페스트의 탈주 장면은 영화에서도 보기 드문 명장면이었다. 앞으로 어떤 장면을 통해 탈북자라는 사회적 요소와 의학 드라마로서의 재미와 로맨스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을지 자못 기대된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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