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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6.12 19:08 수정 : 2015.10.23 14:48

TV프로그램 '안녕하세요'

황진미의 TV 톡톡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 제15회 퀴어 퍼레이드 슬로건이다. 6월7일 서울 신촌 일대는 퍼레이드 참가자들과 이를 막으려는 일부 개신교 신자와 수구단체 사람들이 대치하여 혼전이 벌어졌다. 어떤 이들은 “세월호 사건도 있는데, 왜 굳이 축제를 강행하냐”며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퀴어 퍼레이드는 세월호의 교훈과 무관하지 않다. “가만히 있으라”는 사회적 압력 속에서 익사당하기를 거부하는 성소수자들의 외침이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이들은 일부 참가자들의 노출을 문제 삼으며 “동성애를 혐오하진 않지만, 문란함에 반대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퀴어 퍼레이드는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인정받으려는 행사지, 이성애자들의 호감과 동의를 구하는 행사가 아니다. 존재를 인정받는 것이 왜 중요한가? 이는 성소수자들이 그동안 얼마나 ‘없는 사람들’로 취급되어 왔는지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한국방송·사진)는 수년째 인기있는 예능프로그램이다. 입담 좋은 사회자들이 일반인들의 고민을 소개하며, 고민 당사자와 유발자를 불러 공감과 조언을 곁들인다. 소개되는 사연들은 괴짜 친구로 인한 성가심부터 심각한 가정불화까지 다양하다. 성차와 관련된 소재도 빠지지 않는다. 가령 남자 같은 외모를 지닌 여성이나 여자 같은 목소리를 지닌 남성이 출연해 그동안 겪은 오해와 편견들을 들려준다.

6월2일치 방송에선 선머슴 같은 40대 여성이 출연해 목욕탕에 들어서면 바지부터 내린다는 사연을 들려줬다. 4월28일치 방송에는 건장한 남자 같은 외모를 지닌 20대 여성이 출연해 자신에게 호감을 표한 여성에게 “난 게이다”란 말로 ‘위기’를 모면했던 사연을 들려줬다. 3월17일치 방송에 나온 20대 청년은 남성호르몬 부족으로 2차 성징이 발현되지 않았으며, 아르바이트하는 호프집에서 옷을 벗어보라거나 몸을 만지는 등의 성희롱을 당하기 일쑤라는 사연을 들려줬다.

사회자들은 이들에게 원래 성에 걸맞은 외모나 태도를 갖추라고 조언하고, 가족들은 이성과 사귀거나 결혼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출연자들은 성별로 인한 오해가 지겹지만, 외모나 태도의 변경이 대체로 자신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낀다. 이들 중엔 이성애나 결혼을 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문제는 왜 이들의 개별성을 그 자체로 인정하지 못하고, ‘남성적인 남자’와 ‘여성적인 여자’라는 두 범주 중 하나에 욱여넣으려 하는가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타인의 성을 확인하기 위해 추행도 불사하는 행위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반인권적 분위기다. <안녕하세요>는 ‘남성적인 남자’와 ‘여성적인 여자’ 사이에 폭넓게 존재하는 사람들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성적 다양성을 환기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인위적인 성차질서 안으로 밀어 넣으려는 사회적 인식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러한 퀴어적 인식의 부재와 관용의 한계는 <안녕하세요>에 게이나 트랜스젠더로 오인받는 사람들은 출연해도, 진짜 게이나 트랜스젠더는 출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더 명백히 드러난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지명 뒤 강연에서, 퀴어 퍼레이드에 대해 “나라가 망하려는 것. 좋으면 집에서 혼자 하면 되지,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회적으로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곧 억압이요 말살이다. 퀴어 퍼레이드를 굳이 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침묵은 죽음이다. 모두 선실 벽장에서 나오라!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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