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6.26 18:52
수정 : 2015.10.23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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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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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의 TV 톡톡
<너희들은 포위됐다>(에스비에스·이하 <너포위>)는 서울 강남경찰서를 배경으로 신입 경찰들의 좌충우돌을 그린 20부작 드라마다. 기존 형사물들에 비해 경쾌한 분위기로, 로맨틱 코미디이자 성장드라마의 요소를 지닌다. 드라마는 신입 경찰 4명과 서판석 형사(차승원)가 벌이는 차량 추격 장면으로 시작한다. 토 쏠리는 곡예운전과 테이저건으로 검거하는 마무리까지 코믹 형사물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그러나 드라마는 곧 11년 전 마산으로 옮겨간다. 우스꽝스러운 청소년극처럼 시작된 마산 시퀀스는 심각한 살인사건으로 이어진다. 눈앞에서 엄마가 죽는 것을 목격한 소년은 살인범에게 쫓기고, 보육원에서 새 이름을 얻는다. 소년은 은대구 형사(이승기)로 자라나 엄마의 죽음과 관련있다고 생각되는 서판석 형사를 염탐하며 사건의 비밀을 캐내려 한다. 이는 현재 경찰서장이자 보육원 시절 후견인이었던 강석순 서장(서이숙)의 도움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강석순 서장은 당시 수사를 방해한 인물이자, 사건의 몸통에 해당되는 권력자와 연결되어 있다. 마침내 은대구는 어머니를 살해한 범인을 직접 검거하지만, 배후를 캐는 데는 실패한다.
드라마는 11년 전 살인사건의 미스터리를 중심서사로 삼고, 매회 신입 형사들이 맡는 사건들을 보여준다. 현재 사건들은 다소 허무하다. 존속살인인가 했더니 낙상이고, 주검 없는 살인사건인가 했더니 가출이었다는 식이다. 물론 그 속에 기묘한 교훈이 숨어 있다. 유흥과 사치품, 성형과 스토킹, 게임중독과 보험금, 맷값 폭행 등 넘치는 부와 비틀린 욕망으로 돌아가는 삶에 대한 조망이 강남이라는 장소와 맞물려 특정한 의미를 생성한다.
하지만 드라마의 사회비판적 기능은 미미하다. 헐거운 에피소드에 시트콤적인 구성은 비판에 몰입하기 힘들게 한다. 그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성장드라마의 요소다. <너포위>는 기존의 어떤 형사물보다 어린이 성장 추리물 <플루토 비밀결사대>(교육방송)와 유사하다. 남자 셋, 여자 하나로 구성된 팀이 특유의 혈기와 슬기로 사건들을 해결해간다는 구성은 두 드라마의 공통점이다. 멤버들 간의 우정·애정 관계도 비슷하고, 사건의 중량감이나 사건을 통해 교훈을 얻는다는 점도 유사하다. <너포위>가 성장드라마인 것은, 현재의 코믹한 분위기와 11년 전 심각한 살인사건 사이에 놓인 이질적인 간극을 은대구라는 소년의 성장담으로 접합시키는 것에 의해서도 증명된다. 요컨대 <너포위>는 여전히 소년의 마음을 지닌 20대들이 경찰서라는 꿈의 무대에서 펼치는 ‘탐정놀이’를 재현한 성장드라마다. 이는 최근 한 교사가 <너포위>를 본 어린이가 경찰을 꿈꾸게 되었다며 감사편지를 보내온 것에서도 방증된다.
<너포위>가 20대 중후반이 등장하는 성장드라마란 사실은 결코 폄하가 아니다. 그것은 흔히 어린이나 청소년에 국한된다고 여겨졌던 성장의 시기가 20대 중후반까지 대책 없이 연장되었음을 뜻한다. 이제 20대 중후반에 겨우 사회에 진입하여도, 과거 대학생들이 누리던 사회적 인정도 받지 못한 채 조직 안의 주변부적 존재로 남는다. 불안정한 주거와 부모에 대한 부채의식이 그들의 발목을 잡는다. 은대구와 어수선(고아라)은 권력의 피해자가 된 자신의 부모를 가엽게 여긴다. 주체의 성장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오이디푸스적 반항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들이 진정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은 식민화된 부모가 아니라, 권력자로 표상되는 ‘자본-국가’인지도 모르겠다. 은대구와 어수선이 권력자와 조직의 압력에 저항해 싸울 수 있을까. <너포위>가 어린이 드라마를 넘기 위한 문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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