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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7.10 19:03 수정 : 2015.10.23 14:46

배우 이준기.

황진미의 TV 톡톡

드라마 <조선총잡이>(한국방송2)는 개화기를 배경으로 한 액션 사극으로, 빼어난 화면과 이준기의 섬세한 연기로 인기를 끌고 있다. 고종 친정 3년, 개화파 선비들이 신식 총을 든 총잡이에 의해 연달아 암살되자, 고종(이민우)은 무위영의 박진한(최재성)에게 사건을 맡긴다. 역관의 딸이자 개화사상을 익힌 정수인(남상미)은 스승이 남긴 책을 전달하려 애쓰고, 박진한의 아들 윤강(이준기)이 수인을 돕는다. 총잡이는 경기 보부상단의 수장 최원신(유오성)으로, 수구파의 사주를 받는다. 그는 진한을 죽이고 윤강에게 총상을 입힌다. 윤강은 김옥균(윤희석)에 의해 목숨을 건지고, 3년 뒤 일본인이 되어 제물포에 나타난다.

드라마의 배경은 1875년에서 1878년으로, 개항을 전후한 시기이다. 드라마는 정통 사극이 아니며, 사건과 인물이 실제와 다르다는 점을 자막으로 밝히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과 다른 점이 있더라도 허용된다. 가령 무위영은 신식 군대인 별기군이 창설되었던 1881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쯤은 넘기는 게 예의다. 그러나 드라마의 관점에 대해서는 큰 틀에서 논해볼 가치가 있다.

드라마는 “쇄국론자들이 지키려는 것은 그들의 권세와 재물일 뿐이며, 조선이 살 길은 일본처럼 개국하는 것”이란 개화파의 연설로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식 총으로 그들을 죽이는 것은 수구파이다. 드라마는 개화파와 수구파를 선악 구도로 대립시킨다. 개화파는 역관, 서얼이 함께하며, 고종이 지지한다. 수구파에는 안동 김씨 등 세도정치 세력과 보부상단이 속해 있다. 민황후는 이들과 거리 두기를 하면서 고종에게 조언한다. 그런데 이러한 드라마의 구도는 엄청난 사실 왜곡이다. 대원군이 물러간 친정체제에서 조정을 장악한 건 민황후와 민씨 일가다. 그들은 온건 개화를 추진하면서, 청나라에 의존하다가 청일전쟁 후 친러시아로 갈아탄다. 급진개화파들은 친일을 주창하다 갑신정변을 일으키고 실패 후 일본으로 망명했다. 실제 역사에서 급진개화파와 민씨 세력 중 누구를 선으로 볼 것인지 애매하다. 정조 시대 개혁파와 수구파를 선악 구도로 놓는 예는 많아도, 고종 시대 개화파와 수구파를 선악 구도로 놓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엄청난 왜곡을 감행하며 드라마가 선악의 구도를 취한 이유는 고종을 개명군주로 보기 위함이다. 정조의 개혁정치가 저지되지 않았다면 자생적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라는 ‘내재적 발전론’을 고종 시대까지 연장하여, 고종이 추진한 개혁이 근대화의 초석이었으며 일본한테 잠식되지 않았다면 근대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믿는 것이다.

여기서 난감해지는 것은 ‘민중’이다. 제작진이 밝힌 드라마의 소개말은 “조선의 마지막 칼잡이가 총잡이로 거듭나 민중의 영웅이 돼가는 과정을 그린 감성액션로맨스”이다. 윤강이 민중의 영웅이 된다는 뜻인데, 지금까지 본 그의 모습은 개화파와 어울리다 멸문당하고 도일 후 일본인이 되어 돌아와 애꿎은 보부상들에게 총을 쏘는 것이었다. 장차 그는 일본 자본의 앞잡이가 되어 조선의 금광을 채굴하려 한다. 당시 광산 채굴은 고종이 외국자본 침투를 막기 위해 가장 애쓴 분야다. 아무리 좋게 봐도 그는 친일개화파의 범주를 넘지 않는데, 그를 영웅으로 그린다면 결국 ‘식민지 근대화론’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실제 역사에서 김옥균·박영효 등이 동학농민운동이나 을미사변 등의 정국에서 전혀 민중적이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아득할 지경이다. 복수심을 품고 일본인 총잡이가 되어 나타난 그의 총구가 향할 곳은 실제 역사에선 명성황후일 수밖에 없는데, 드라마가 이러한 난맥상을 어떻게 피해갈지 몹시 궁금하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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