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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7.24 19:04 수정 : 2015.10.23 14:46

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

황진미의 TV 톡톡

<운명처럼 널 사랑해>(문화방송·사진)는 대만 인기드라마 <명중주정아애니>를 리메이크한 로맨틱 코미디로, 흔한 여자 김미영(장나라)과 재벌남 이건(장혁)이 맺어지는 과정을 그린다.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에, 하룻밤 정사를 통한 임신이라는 막장코드에, 21세기에 문중회의까지 하는 족벌 기업에, 거리낌 없이 남발되는 우연의 겹침까지. 고전적인 의미에서 드라마를 평가하는 기준이었던 독창성, 개연성, 치밀함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국내외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이유가 뭘까. 흔히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드라마의 법칙으로 설명하는 것도 맞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를 보며 욕을 하는 게 아니라, 주인공들을 응원하고 축복하며 다행감을 느낀다. 대체 이 현상을 어찌 봐야 할까.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를 통해 얻고 싶은 것은 서사적 완결성이나 리얼리티가 아니다. 결말도 전혀 궁금하지 않다. 오히려 완벽한 해피엔딩일 것이라는 모종의 합의가 전제되어 있다. 현실에서 신데렐라의 완벽한 해피엔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시청자들도 익히 알기 때문에, 어떠한 우연의 남발도 개의치 않을 테니 부디 이들을 맺어주라는 지상명령이 작동하는 셈이다. 이 경우 드라마에 대한 평가는 다른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설정과 전개는 시청자들과 이미 합의된 상태에서, 매 장면을 통해 어떤 웃음과 흐뭇함을 안겨주는지가 관건인 시트콤이나 예능의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매우 성공적이다. 첫째, 시청자들의 무조건적인 응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드라마는 여린 여자와 잘난 남자를 통해 동정과 호감을 끌어내는데, 이는 원작에 비해 훨씬 강화되었다. 원작의 여성은 ‘따돌림이 두려워 비굴하게 사는’ 소심함을 지녔지만, 김미영은 ‘내가 거절하면 상대가 민망할까 봐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선량함을 지닌다. 이건 역시 능청스러움과 기묘한 카리스마를 지닌 한국형 로맨티스트로 거듭났다. 둘째, 과장된 슬랩스틱과 장난스러운 표현으로 시트콤과 예능을 오가는 웃음을 빚어낸다. 샴푸광고, 떡방아, 듀엣곡, 달팽이, 산부인과 추격 장면 등은 이 드라마가 정극이 아니라는 강한 메시지와 함께 갈등의 심각성을 웃음으로 치환시키는 코미디 관객의 자세를 취하게 한다.

그 결과 드라마가 내장하고 있는 계급적 갈등은 완전히 무화된다. 김미영은 법률회사의 비정규직이며 미미한 육체 자본을 지닌다. 자본주의적 신분질서 하에서 ‘평민’에 속하는 그는 기업을 대물림받는 ‘왕족’과 하룻밤 정사를 치른 후 ‘꽃뱀’으로 몰린다. 남자가 자신의 피해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가운데, 김미영은 전통적으로 여성들에게 부여되었던 피해자로서의 입장도 인정받지 못한다. 이는 자본주의적 신분질서를 첨예하게 드러내는 장면이지만, 드라마는 이를 김미영의 ‘성격 비극’으로 환치시켜버린다. 섬의 공장이 매각되고, 고용승계가 이루어지지 않고, 지역 환경을 초토화시킬 계획이 자본가들의 펜 끝에서 결정되는 장면도 심각한 사회갈등을 품고 있지만, 드라마는 이 모든 것이 해프닝에 불과하고 결국 섬사람들도 모두 행복해질 것이라는 낙관을 안긴다.

이는 드라마와 시청자가 맺은 일명 ‘프로작(항우울제)협약’으로 불려도 좋을 ‘무비판 큰 웃음 협약’의 효과다. 이건은 종종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우리더러 믿으라는 거야?”라는 치명적인 대사나 과장된 웃음소리를 들려준다. 이것이 바로 드라마가 눙치며 누설하는 ‘프로작 협약’의 흔적이 아니겠는가.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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