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8.07 18:18
수정 : 2015.10.2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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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속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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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의 TV 톡톡
<괜찮아, 사랑이야>(사진)(에스비에스)는 노희경 작가와 김규태 감독이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이후 다시 만나 만든 16부작 로맨틱 코미디이다. 조인성, 공효진 주연에 성동일, 이광수 등 배우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썩 잘 어울리는 남녀 주인공들의 세련된 매력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거니와, 장르에 걸맞게 티격태격하며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괜찮아, 사랑이야>는 정신과 의사인 해수(공효진)를 중심으로 메디컬드라마의 속성을 띄며, 정신병이나 성관계 등 그동안 금기시 되었던 문제들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드라마는 정신질환의 여러 사례들을 보여주며, 정신질환을 지닌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관용을 촉구한다. 드라마는 해수가 일하는 병원의 환자들뿐 아니라, 주인공과 주변인물을 강박증, 불안장애, 뚜렛 증후군 환자로 설정한다. “인구의 80%가 신경증을 앓고 있다”는 드라마 속 대사처럼, 정신질환은 특별한 사람들만 걸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다. 드라마는 외과 의사도 암에 걸리듯이 정신과 의사들도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알고 극복하려는 모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허문다.
그동안 정신질환에 대한 우리사회의 인식 수준은 매우 낮아서, 정신질환자들은 추문과 배제와 격리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 때문에 급격히 늘고 있는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에 대해서도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못했다. 더욱이 최근 강력범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에 관한 논의로 흐르면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공포와 이질감은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괜찮아, 사랑이야>는 정신질환자들을 공포의 대상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고통을 지닌 존재이자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존재로 그린다.
또한 드라마는 성관계를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그린다. 오히려 성관계를 맺지 못하는 해수의 상태를 병적으로 본다. 그가 성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은 사회적 금기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의 불륜으로 인한 외상 때문이다. 성을 더럽게 여기고 거부하는 행위를 가부장적 순결이데올로기가 내면화된 상태가 아니라, 극복해야 할 신경증의 증상으로 그리는 것이다. 이는 성 억압의 이데올로기가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함을 드러낸다. 성관계에서 어떠한 도구와 체위가 활용되든 그것은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잣대가 되지 못하며, 소통과 동의의 문제가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도 일깨운다. 또 트랜스젠더나 동성애가 정신질환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가족들이나 그들의 박해에 저항하지 않는 상태를 병적으로 판단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성은 금기의 대상이 아니라, 친밀감을 나누는 소통행위로 전유되어야 함을 일깨우는 것이다.
드라마는 정신질환과 성관계에 대한 진보적인 사고를 경유하여, 사랑에 대한 독특한 정의를 내린다. 주인공들은 겉으론 번드르르해 보이지만, 자신들만의 결핍을 지닌다. 유명작가인 재열(조인성)은 강박증과 분열된 자아를 갖고 있으며, 친족살인의 의혹에 휩싸여있다. 해수 역시 불안장애와 관계기피증을 앓고 있으며, 모성콤플렉스를 지닌다. 드라마는 이들이 가까워지면서 서로의 정신적인 문제를 알아가고, 관계를 통해 해소시켜주는 과정을 그린다. 즉 사랑이란 그 사람의 ‘정신병’을 아는 것이자, 그것을 용납하고 보듬으며, 마침내 완화시키고 견딜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는 정의를 드라마가 역설하는 것이다. 정신병과 성관계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며, 드라마가 내리는 사랑의 정의가 이만하면 꽤 급진적이지 않은가.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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