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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8.21 19:48 수정 : 2015.04.27 18:32

드라마 <마마> 속 한 장면.

황진미의 TV 톡톡

<마마>(문화방송)는 죽음을 앞둔 미혼모가 아들의 가족을 만들어주기 위해 옛 남자의 가족과 얽히는 사연을 담은 주말드라마다.

한승희(송윤아)는 13년 전 미혼모로 캐나다에 건너가 큰 성공을 거둔 화가이다. 그러나 위암 말기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데다, 아들 한그루(윤찬영)는 엄마에 대한 원망과 모성결핍을 지닌다. 승희는 그루를 생부인 문태주(정준호)에게 보내기 위해, 태주 가정을 탐문한다. 10년이나 사귄 자신과 헤어진 뒤, 부잣집 딸 서지은(문정희)과 결혼한 태주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가정을 꾸리며 산다는 정보를 입수한 승희는 그루와 함께 귀국한다. 그러나 듣던 것과 딴판인 태주 가정의 실상에 승희는 경악한다.

‘에듀 푸어’(자녀의 사교육비 때문에 생활고를 겪는 가정)인 지은은 빚 때문에 파산 직전에 몰리고, 태주는 고혹적인 상사의 제안을 뿌리치지 못해 ‘생계형 불륜’에 빠져있다. 절박한 지은의 빚을 승희가 갚아 주자, 지은은 그루의 학원 스케줄을 관리해주고 밥을 챙겨먹이는 식의 이른바 ‘학습 대리모’를 자처한다. 그루와 지은의 딸이 친해지자, 두 여자는 급속히 가까워진다. 승희는 자기 존재를 숨긴 채 태주의 외도가 끝나도록 개입하는 한편, 외도를 눈치 챈 지은을 다독인다.

드라마는 미혼모 아들의 아버지 찾기를 통해, 강남 ‘사교육 1번지’를 배경으로 자본과 학벌을 매개로 한 중상계급의 허위의식을 까발린다. 가난한 집 장남으로 국내최고 대학을 졸업한 태주도 자기 능력만으로 중상층 가정을 부양할 수 없는 사회에서, 가족을 중심으로 계급을 유지하려는 욕망은 더욱 공고해진다. 드라마는 계급 재생산을 위해 자녀교육에 ‘올인’하는 중상계급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자본주의적 모성의 진면목을 누설한다.

드라마의 핵심적인 갈등은 승희와 지은의 위태로운 우정이다. 이들은 한 남자의 자식을 둔 두 여자로, 승희 말처럼 “절대로 친구가 될 수 없는” 관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우정이 형성되는데, 이를 ‘여성적 연대’ 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들이 적대를 넘어서 우정을 이루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승희가 곧 죽을 사람이기 때문이며, 둘째는 이들의 목표와 욕망이 같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기 아이를 번듯한 중상계급 가정의 아이로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은은 사교육에 쓸 돈이 부족하고, 승희는 돈은 많지만 아들에게 엄마노릇·아빠노릇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이들은 각자의 필요와 결핍에 의해 합작하여, 공동의 목표를 이룬다. 지은이 전통적인 시누이 유세도 포기한 채 올케의 아들과 살림을 돌본 것이나, 그루의 ‘학습 대리모’로 나선 것은 모두 돈 때문이다. 자본은 고착된 가부장적 위계도 내파시키며, ‘학습 대리모’란 말이 극명히 보여주듯 모성노동은 돈으로 환산된다. 승희가 지은을 보듬으며 태주와 상간녀를 떼어놓은 것은 장차 아들이 편입될 가정을 수호하기 위함이다. 승희의 이러한 행동은 섹슈얼리티적 질투보다 모성적 욕망이 지배적임을 보여준다. 아이에게 ‘유복한 정상가정’을 주는 것을 목표로 삼는 자본주의적 모성 앞에, 가부장적 위계나 섹슈얼리티적 정념은 모두 무력하다. 결국 승희와 지은이 의기투합한 욕망은 ‘강남 엄마’란 이름으로 프로젝트화 되어 있는 자본주의적 모성이다. 그런데 이들의 모성이 극중에서 이혼하고도 아들이 국제중에 입학할 때까지 주말부부인 척 하는 한세 부모의 징그러운 욕망이나, 한 세대 전 사람으로서 지겹게 아들타령을 해대는 태주 어머니의 퇴행적 욕망과 비교하여 얼마나 다른 것일까. 이들의 기이한 우정은 ‘여성적 연대’가 아니라, ‘모성적 결탁’이라 불러야 맞지 않을까.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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