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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9.25 19:54 수정 : 2015.10.23 14:45

<에스비에스> 드라마 <비밀의 문 : 의궤살인사건>

황진미의 TV 톡톡

<비밀의 문 : 의궤살인사건>(에스비에스·사진)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다룬 24부작 드라마로, 2회가 방송되었다. <불멸의 이순신>을 집필한 윤선주 작가 극본에, <뿌리 깊은 나무>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던 한석규의 출연만으로도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하다.

<비밀의 문>은 영조(한석규)가 즉위 직전 노론의 겁박으로 비밀협약을 맺는 것으로 시작된다. 영조는 재위 20년에 협약문서를 불태워 없앴다고 믿고 있지만, 10년 뒤 협약문서를 본 도화서 화원이 의문사를 당해 시체로 발견된다. 드라마는 재위 30년째인 영조가 균역법을 두고 노론과 대립하는 가운데, 대리청정 중인 세자가 민간의 책 출판을 허하려는 정책을 펴려다 선위파동을 겪는 것을 보여준다.

드라마는 미스터리 기법을 활용하여 사도세자(이제훈)에 대해 알려진 것과 다른 사실들을 보여줌으로써 신선한 자극을 안긴다.

첫째, 영조는 당쟁을 잠재우기 위한 탕평책을 썼던 것으로 유명하지만, 영조 자신도 당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 장희빈을 폐위하여 죽인 노론은 경종의 이복동생 영조를 서둘러 왕세제에 올린다. 즉위 4년 만에 경종이 죽자 영조가 왕위에 올랐는데, 경종의 죽음이 영조가 올린 음식 탓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영조는 자신을 왕위에 올린 노론에게 발목이 잡혀있을 뿐 아니라, 무수리의 아들이라는 콤플렉스와 경종 독살설 등으로 정통성 시비를 안고 있었다.

둘째, 오랫동안 사도세자의 죽음은 정신질환에 의한 부도덕한 행동 탓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사도세자의 죽음은 부자간의 미묘한 갈등과 정쟁의 결과라고 보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드라마는 콤플렉스에 가득 찬 영조가 쉽게 세자가 된 아들에게 품는 미묘한 질투심과, 정국주도용으로 영조가 휘두르는 선위파동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세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로 세자는 15살에 대리청정을 맡을 만큼 영특함을 인정받았으며, 감정기복이 심한 영조는 세자가 5살 때부터 8차례에 걸쳐 선위파동을 일으켰다는 기록이 있다.

셋째, 사도세자의 죽음을 <한중록>으로 적은 혜경궁 홍씨는 비운의 여인으로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혜경궁 홍씨는 노론 출신으로, 그 집안이 사도세자의 죽음에 기여했으며 이로 인해 정조의 즉위 후 멸문 당한다. <한중록>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애도하려는 기록이 아니라 멸문당한 친정을 신원하기 위한 기록이며, 혜경궁 홍씨 역시 사도세자의 죽음에 동조한 인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드라마는 혜경궁 홍씨를 정략적인 인물로 그림으로써 이러한 견해에 힘을 싣는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재조명하는 것은 정조를 개혁군주로 바라보려는 시도의 연장선 위에 있다. 사도세자의 죽음이 대중에게 환기된 건 정조를 개혁군주로 그린 소설 <영원한 제국>(1993)부터였다. 이후 사료분석을 통해 사도세자를 소론을 기반으로 개혁을 꾀하다 노론에 의해 죽은 인물로 보는 이덕일의 역사서<사도세자의 고백>(1998)이 출판되면서 이러한 견해가 대중문화에 녹아들었다. 사도세자의 죽음은 자생적 근대의 맹아가 싹트고 있었다는 영·정조 시대에 개혁세력이 보수세력을 넘지 못하고 참살당한 안타까운 사건으로 재해석되는 것이다. 조선후기를 자생적 근대의 기회를 날려버린 시기로 보는 시각은 사도세자에게 투사되며, 이러한 투사는 소현세자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지만, 사극은 그 틈새를 비집고 패자를 부활시켜 현재의 아쉬움을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한다. 거울 속에는 ‘지금 우리’가 있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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