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0.23 19:14
수정 : 2015.10.23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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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비에스 <청담동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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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의 TV 톡톡
<청담동 스캔들>(사진·에스비에스)은 재벌가의 고부갈등과 불륜 등을 그린 아침드라마다.
가난한 싱글 맘의 딸 은현수(최정윤)는 자신에게 반한 남편에 의해 재벌가 며느리가 된다. 시어머니 강복희(김혜선)는 현수를 딸처럼 여기며, 시동생은 현수를 누나처럼 따른다. 임신을 애타게 기다리던 현수는 시어머니가 자신에게 몰래 피임약을 먹이고 있었으며, 이를 안 동서는 자신의 이권을 위해 시어머니와 계약서까지 쓰며 함구해왔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하지만 임신이 안 됐던 진짜 이유는 남편의 무정자증 때문이었다. 시어머니는 둘째 며느리도 불임이란 사실을 알고 난 뒤, 현수에게 시동생의 정자로 인공수정을 시도한다. 그러나 비밀을 안 현수는 가족들에게 폭로하며, “더 이상 충실한 개나 고급 하녀로 살지 않겠다”는 선언과 함께 집을 나간다. 현수는 어린 시절 인연이 있던 장서준(이중문)의 도움으로 사회생활을 재기한다. 그러나 현수 엄마가 친모가 아니라는 비밀을 알아낸 시어머니는 서준을 좋아하는 남주나(서은채)와 함께 현수의 사회생활을 방해하고, 현수 친모의 딸 찾기를 가로막는다.
드라마는 주 시청자 층의 무의식적 욕망을 충실히 반영한다. 첫째, 시어머니의 위선과 동서의 기회주의적 행태에 증오를 느낀다. 둘째, 남편이 아무리 나를 사랑한대도, 남편의 사랑은 이기적이고 속물적이라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 셋째, 어린 시절 인연이 있는 동생이나 누나처럼 따르는 시동생 등 연하남의 지지와 조력을 받고 싶다. 넷째, 나는 현재 주부이지만 기회를 만나면 성공할만한 재능을 갖고 있다. 다섯째, 친정부모의 사랑은 애달프지만, 가난한 부모 대신 고상한 부모를 갖고 싶다.
드라마는 가난한 여성이 청담동 며느리가 되길 꿈꾸는 ‘신데렐라’ 콤플렉스보다 훨씬 구체적인 환타지를 담는다. 누구나 느끼는 시댁 스트레스에 공감해주며, 아줌마가 멀쩡한 연하남을 만나 자아실현에 성공한다는 ‘줌마-렐라’ 콤플렉스에, 부자 친부모가 따로 있다는 ‘집 없는 아이’ 콤플렉스를 가미한 것이다.
그러나 <청담동 스캔들>이 주부들의 소망충족을 위한 자위용 드라마인 것만은 아니다. 자칫 막장처럼 보이는 서사 안에 중요한 사회적 메시지가 숨어있다.
첫째, 남한사회의 지배계급은 이미 폐쇄적인 신분질서로 공고화 되었다. 시어머니가 현수에게 피임약을 먹인 이유는 ‘천하고 근본 없는’ 며느리를 쉽게 내쫓기 위함이었다. 재벌가 사람인 시어머니, 동서 그리고 주나는 평범한 노동계급 사람을 ‘천하다’고 멸시한다. 계급이 아니라 아예 신분이 된 것이다.
둘째, 세습자본주의 하에서 재생산권이 중요하다. 드라마에서 불륜은 진짜 임신이 아닌 이상 가볍게 처리되며, 시어머니의 권력은 재생산에 관한 것이었다. 현수에게 시동생의 정자를 수정시키는 일은 재생산권이 본인에게 있다는 인권의 관점에서 보자면 뜨악하지만, 혈통으로 부가 승계되는 세습자본주의 논리 하에선 이상할 것도 없다.
셋째, 생체지식권력에 주목하라. 시어머니는 현수에게 피임약을 먹이고, 아들의 정부에겐 정신과 병력과 산부인과 진료기록으로 협박하며, 현수 엄마에겐 출생의 비밀로 협박한다. 현수의 반격도 생체정보를 알아내고, 이를 정보기술과 접목시키는 방식으로 행해진다.
흔히 막장드라마를 욕하지만, 막장의 논리는 이미 현실 안에 있다. 세습자본주의 욕망이 생체지식과 정보기술 등과 결합하면 막장의 권력이 발휘되는 것이다. 검찰과 경찰은 물론이고 정보통신회사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이르기까지 개인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사찰하는 시국에 실로 무서운 드라마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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