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1.06 19:07
수정 : 2015.10.23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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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엔> 드라마 <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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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의 TV 톡톡
<미생>(사진)은 10월17일 첫 회가 방송된 <티브이엔> 드라마로, 최고시청률 6%를 기록하며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장그래(임시완)는 프로 바둑기사로 키워졌으나 실패하고, ‘낙하산’으로 무역상사 인턴이 된다. 고졸 검정고시가 최종학력인 그는 직장생활은 물론이고 학교생활 경험마저 없는 탓에, 회사라는 조직에서 완전히 외톨이가 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실패를 ‘노력이 부족했던 탓’으로 규정짓고, 필사의 노력을 경주한다. 그는 바둑에서 익힌 전략과 전술을 바탕으로 점점 적응력을 키워간다.
<미생>은 <이끼> 등 조직의 생리를 무서우리만치 묘파해내는 윤태호 작가의 웹툰을 바탕으로, 입체감 있는 각색에 성공한 드라마이다. 영화를 보는 듯 빠르고 치밀한 연출에, 주·조연 모두의 연기신공이 놀랍다.
<미생>은 현실의 질감을 잘 살린 직장드라마인 동시에, 현실의 논리를 뛰어넘는 윤리를 담은 드라마이다. <미생>을 리얼리즘과 휴머니즘을 동시에 지닌 드라마로 꼽을 수 있는 미덕을 꼽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손쉬운 판타지의 길을 가지 않는다. 여느 드라마였다면, 인턴 팀 발표 시험장면에서 뺀질거리던 동료 한석률(변요한) 대신 나선 장그래가 청산유수로 발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판타지이다. 발표를 준비하지 않은 장그래가 한석률보다 더 잘 하기는 어렵다. 대신 드라마는 장그래가 개인발표 장면에서 한석률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카타르시스를 주기엔 더디지만 이편이 훨씬 현실적이다.
둘째, 쉽게 악역을 만들지 않는다. 초반에 장그래가 따돌림을 당할 때, 누군가 의식적인 따돌림을 행하는 것보다 각자 바쁘게 일하며 돌아가는 사무실을 장그래가 빙 둘러보며 “저런 암묵적인 일사분란함은 무엇을 얼마나 나눠야 가능한 것일까?”하며 생각하는 대목은 더 큰 외로움을 전달한다. 또한 드라마는 부분적인 다중시점의 차용으로, 다른 이들의 입장을 보여준다. 오 과장(이성민)에게도, 한석률에게도, 장백기에게도 그들만의 애환이 있다는 것을 드라마는 그들의 내레이션과 시점숏을 통해 보여준다.
셋째, 여성 직장인의 입장을 담는다. 첫 회에서 몸매가 드러난 옷을 입은 안영이(강소라)가 바이어에게 엉덩이를 잡히는 장면은 곧 이은 반전을 통해 반여성적인 시각을 반성하게 만든다. 흔히 여성들이 섹슈얼리티를 이용하려 든다거나, 성추행을 업무의 연장인 양 그리는 것은 여성 직장인들을 여전히 성적 대상으로 보는 시각에서 연유한 것이다. 드라마는 가장 유능한 인턴이었던 안영이가 남성중심적 부서에서 홀대당하는 모습이나, 육아로 힘든 신 차장의 모습을 통해 일과 가사를 양립할 수 없게 만드는 직장문화를 비판한다.
넷째,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이상의 윤리를 보여준다. 밟고 밟히는 직장생활에서 살아남으려면 ‘호구’가 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을 겨우 터득한 장그래는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거래처에게 ‘호구’가 된 박 대리를 도와 그를 위기에서 구한다. 그리고 “무책임해지세요”라고 조언한다. 장그래로 인해 용기를 얻은 박 대리는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할 뿐 아니라,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방식을 통해 상생한다.
물론 이것조차 판타지일 수 있다. 장그래에게 인턴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나, 오 과장처럼 속깊은 상사가 있는 것이나, 정면승부로 상생의 길을 연다는 것 모두 판타지 일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장그래처럼 맑은 눈빛과 특별한 노력으로 다른 이와 스스로를 추동해 낼 수 있다면, 거기엔 희미하나마 ‘나아가는 길’이 열릴 것이다. 미생이 아닌 완생에 다가갈 것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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