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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1.20 19:33 수정 : 2015.10.23 14:42

에스비에스 드라마 <미녀의 탄생>

황진미의 TV 톡톡

<미녀의 탄생>(에스비에스·사진)은 로맨틱 코미디로, 20회 중 6회가 방송됐다. 드라마는 뚱뚱한 여성이 전신성형으로 미인이 된 뒤, 남편에게 복수한다는 설정을 갖는다. 흡사 영화 <미녀는 괴로워>와 드라마 <아내의 유혹>이 합쳐진 듯한 만화적 설정에, ‘그녀’의 복수를 돕는 괴짜 남성과의 예기치 못한 로맨스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특히 한예슬과 주상욱의 코믹연기가 뿜어내는 천연덕스러운 매력은 시청자들을 몰입시킨다.

뚱뚱한 사금란은 뛰어난 살림솜씨로 8년간 시댁 식구를 봉양하였지만, 남편은 불륜에 빠진다. 사금란은 사태를 되돌리려 하지만, 남편은 사금란을 살해한다. 그러나 가까스로 살아난 사금란은 한태희(주상욱)의 도움으로 전신성형을 받고 최고의 미녀 사라(한예슬)로 거듭난다. 사라는 남편이 자신을 살해하고 자살로 위장했으며, 자신의 재산을 빼돌렸음을 알고 미모와 살림 솜씨를 무기로 이미 재혼한 남편과 시댁에 접근하여 관계를 파탄시킨다. 한편 태희는 자신이 변신시킨 사라에게 점차 사랑을 느낀다.

드라마는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말을 되뇌이며, 사금란이 원래 가지고 있었으나 뚱뚱한 외모로 인해 가려졌던 여러 미덕들이 사라를 통해 조명되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사금란은 살림실력, 체력, 부지런함, 지고지순함, 보살핌의 성정, 거기에 막대한 부동산까지, 외모를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자본주의-가부장제’가 요구하는 아내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단 하나의 결격사유인 외모 때문에 나머지 장점들이 묻힌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역설이 존재한다. 사금란이 사라가 됨으로써 나머지 가치들이 인정받는 사태는 오히려 외모가 얼마나 절대적 가치인지를 드러낸다. 결국 우리의 눈을 잡아채는 것은 사라의 미모이며, 우리를 판타지의 세계로 영도하는 것은 한예슬의 육체이다.

<미녀의 탄생>이 제공하는 판타지의 본질은 초절정 미녀이자 살림의 여왕인 ‘완벽한 그녀’가 도도함 없이 천진한 복종의 자세를 취하는 데 있다. 그녀는 미녀가 되었지만 자존감이 낮다. 미녀가 된 뒤 처음에 그녀는 남편의 아내이자 시댁의 며느리로 돌아가길 원했다. 복수를 결심한 후에도 결국 그녀가 유혹하려는 대상은 남편이며, 살림 실력을 무기로 삼는다. 이는 여성이 외모권력을 지렛대 삼아 기존의 가부장적 질서를 위협하거나 교섭하려 들 때 이 사회가 품는 우려, 가령 ‘팜므파탈’이나 ‘된장녀’ 와 반대되는 지점에 이 드라마가 놓여있음을 보여준다. 최고의 미모를 지니면서도, 일편단심에 살림의 여왕인 그녀의 순치된 욕망을 보면서 안도하는 것이다.

드라마는 그녀를 주조하고 관리하고 조종하는 남성 태희의 시선에 시청자의 눈을 겹쳐놓는다. 즉 시청자들은 태희의 눈을 통해 그녀를 바라보고 욕망한다. 가장 완벽한 여성이 ‘노예계약’을 쓴 상태로 순종하며,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무방비 상태로 놓여있다. 한집에 살며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한다. 그는 그녀를 ‘아줌마’라고 부른다. 최고의 요리를 할 수 있으면서도 ‘김떡순’(김밥+떡볶이+순대)을 좋아하듯이, 그녀의 사랑에 대한 욕망은 소박하고 천진하다. 귀엽고 만만한 데다 ‘푼수끼’ 넘치는 그녀! 이는 ‘완벽한 아내’에 대한 판타지의 결정판이다.

인터넷엔 드라마에 협찬을 한 비만클리닉과 전신성형에 대한 호기심 어린 질문들, 그리고 한예슬을 비롯한 출연진의 패션이 기사화 되어 범람한다. 미녀이지만 ‘주체 아님’을 강조한 동안열풍과 더불어 ‘순종하는 예쁜 인형’에 대한 선호와 선망이 흘러넘친다. 과연 퇴행의 시대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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