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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18 19:32 수정 : 2015.10.23 14:37

<한국방송2>의 월화드라마 <힐러>.

황진미의 TV 톡톡

<한국방송2>의 월화드라마 <힐러>는 <모래시계>를 썼던 송지나 작가의 신작으로, 전체 20회 중 4회가 방송되었다. ‘힐러’는 첨단장비로 무장하고, 신출귀몰 액션을 구사하는 전문심부름꾼의 코드명이다. 세상사에 무관심하고 남태평양 무인도에서 혼자 살기를 꿈꾸던 ‘힐러’(지창욱)는 스타기자 김문호(유지태)의 의뢰로 채영신(박민영)의 뒤를 쫓는다. 온라인매체 기자인 채영신은 부모에게 버려진 기억을 갖고 있지만, 친모인 최명희(도지원)는 딸이 죽은 걸로 알고 있다.

드라마는 1980년도와 1992년에 서사의 매듭을 지닌다. 1980년 언론통폐합에 반대하여 해적방송을 하던 5명의 대학생들이 있었다. 홍일점이던 최명희는 이들 중 오길한과 결혼하여 딸을 낳지만, 지금은 김문식(박상원)의 아내로 살고 있다. 1992년에 5살이었던 최명희의 딸은 버려졌다. 김문식의 어린 동생이자 해적방송단을 따라다니던 김문호는 그 과정을 알면서도 침묵했다.

현재 김문식은 거대신문사와 종편 방송국의 사주로, 정치권을 움직이는 막후 실세이다. 그는 애처가인 양 행동하지만, 최명희가 오길한과 딸을 잃고 장애를 입게 된 사연과 직접 관련 있어 보인다. 한편, 요절한 자기 아버지가 해적방송단의 일원이었음을 안 ‘힐러’는 채영신의 후배기자로 취업하여 그를 돕는다.

흔히 <힐러>는 ‘모래시계 세대의 자녀들의 이야기’라고 일컬어진다. 민주주의를 위해 용감히 해적방송을 했던 386세대의 자녀들이 진정한 언론인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라고 말해지는 식이다. 그러나 <힐러>에서 과거와 현재는 순접이 아닌 역접의 접속사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사는 세대론적 은유를 품고 있다.

일단 해적방송단의 훼절에 주목해보자. 5명 중 한명은 자본과 권력을 아우르는 거대언론사의 사주가 되었다. 빛나던 홍일점은 장애를 입은 채 부잣집 마나님이 되어 칩거 중이다. 두명은 요절했고, 혼자 희생하여 감방에 갔다 온 이는 ‘힐러’의 스승이 되었다가 홀연히 사라졌다. 이들 중 해적방송의 정신을 잇는 사람은 어린 나이에 어렴풋이 저항의 공기를 맛보았던 김문호뿐이다. 그조차도 채영신을 버린 형의 악행을 방조한 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386세대의 환유인 해적방송단은 영광스런 무용담이 아니라, 변절과 붕괴의 비망록으로 읽힌다.

<힐러>가 조명하는 현재의 언론 상황은 참담하다. 1980년에는 권력의 탄압이 문제였지만, 2014년에는 자본-권력과의 담합이 문제다. 김문식이 속한 거대신문사와 종편은 정치권과 한 몸이 되어 움직이고, 김문호가 속한 공중파 방송국은 광고를 매개로 자본에 휘둘리며 자기검열에 바쁘다. 채영신이 속한 온라인매체는 검색어에 맞춰 똑같은 기사를 수십 개씩 쏟아내며 제목으로 낚시질하기에 바쁘다.

드라마는 이러한 언론 상황에서 진정한 언론인으로 사회를 치유할 주체는 변절한 386세대도 아니고, 과도기적인 김문호 세대도 아닌, 채영신과 ‘힐러’로 대표되는 젊은 세대라고 말하는 듯하다. 변절한 386세대에 의해 버려졌지만, 이들과 결을 달리하는 리버럴한 양부모와 소수자들 틈에서 ‘똘끼’ 충만하고 ‘인간의 뇌’를 발달시키며 자라난 채영신(<상록수>의 여주인공과 이름이 같다)과 오롯한 단독자로 첨단 생존기술을 몸으로 익힌 ‘힐러’. 이들이 사회적 무관심과 개인주의를 떨쳐버리고 사회로 나아간다면, 이들을 김문호처럼 386세대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도 아직 기득권에 포섭되지 않은 세대가 견인해준다면, 사회를 ‘힐링’할 수 있는 새로운 주체가 탄생하리라는 작가의 믿음이 읽히는 것이다.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야 한다. 정체는 죽음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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