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0.22 19:11
수정 : 2015.10.23 14:14
황진미의 TV 톡톡
요즘 세상에 남자는 약자일까?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성 격차 지수’를 포함한 많은 실증지표들이 ‘아니오’라 답하지만, ‘그렇다’고 우기는 이들이 있다. TV 예능 중에도 틀린 명제를 반복하며, 남성들 간의 연대를 강조하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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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스비에스)의 ‘남자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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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스비에스)의 <남자끼리>가 대표적이다. 데이트 도중 위기에 빠진 남자를 보여주고, 주변 남자들의 기지로 위기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웃음의 포인트로 삼는다. 가게 주인은 매상을 포기하고, 손님들은 자신을 망가뜨려가며 남자를 돕지만, 별 이유는 없다. 그저 “남자끼리 돕고 살아야죠. 요즘 세상의 약자는 남자니까요”란 말이 반복될 뿐이다. 등장하는 커플 중 맛보기 커플의 모습은 일반적이지만, 주연 커플의 모습은 지나치게 편향적이다. 여자는 어리광 섞인 말투로 억지스런 요구를 해댄다. 남자가 합리적으로 설득하려 들면, 여자는 헤어지겠다며 정색한다. 이때 가게 주인이 개입하여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남자를 돕고, 손님들도 동조한다. 여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뭐야, 왜 저래?” “여기 이상해”라 말한다. 남성들 간의 은밀한 연대로 돌아가는 세계를 여자는 끝끝내 이해할 수 없다. 남자들이 모두 어깨를 걸고 “오오오 친구야~”를 부르는 장면이 몇 차례 반복된다.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이타적 연대가 가능한 아름다운 세계에서, 여성은 괴상한 타자로 재현된 채 시야에서 추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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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의 방을 사수하라>(엑스티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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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의 방을 사수하라>(엑스티엠)는 더 심하다. <수방사>는 의뢰인의 집을 개조해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해주는 착한 예능이냐고? 천만에. 집안에서도 취미생활을 즐기려는 남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아내 몰래 집을 개조한다. 제작진들은 남편에게 ‘집포기 계약서’의 서명을 받고, 아내를 따돌리기 위해 미행한다. 한나절 만에 거실에 실내 낚시터가 만들어지거나, 야구연습장이 들어선다. 귀가한 아내의 얼굴에 분노와 허탈감이 스치지만, 제작진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악동들의 장난이자, 자기만의 공간도 없이 살아온 ‘가련한 수컷’의 권위와 행복을 위해 벌인 용감한 일로 치부한다. <남자끼리>와 <수방사>는 남성을 약자로 규정하여 남성들 간의 연대를 강조하고, 여성을 소통할 수 없는 타자로 만들어 배제시킨다는 점에서 ‘여성혐오’의 논리를 지녔다.
반면 <코미디 빅리그>(티브이엔)의 <여자사람친구>는 성차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씻는 코미디다. 코미디는 군대 동기인 친구가 여자가 되어 나타났을 때 느껴지는 우정과 이성애 감정 사이의 혼란을 그린다. 장도연의 특징이 잘 살아있는데, 그는 늘씬한 몸매의 미인이면서도 큰 키에 선머슴 같은 면모를 지녔다. 그래서 이성애 감정을 유발하는 동시에, 과격한 몸싸움도 어색하지 않을 친구란 설정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또한 늘씬한 미인과 선머슴 사이의 성차적 간극이 얼마나 좁은지도 반증해준다. 코미디는 트랜스젠더를 건강하게 그린다. 그는 여성의 외모를 지녔지만, 남성이었을 때의 기억과 내면을 유지하고 있다. 자신의 과거나 인간관계로부터 단절된 존재가 아니다. 코미디는 처음에는 윤성호를 등장시켜, 트랜스젠더의 기괴함을 웃음코드로 활용하려 하였지만, 점차 로맨틱코미디에 집중한다.
<여자사람친구>가 제시하는 갈등은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에 딱 맞는다. 별다른 금기도 없이 친구였기 때문에 사랑할 수 없다고 우기는 <너를 사랑한 시간>의 억지나, 고작 남장여자라는 눈가림으로 “남자가 아닌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란 고차원적인 메시지를 전하려 한 <커피 프린스>의 과욕을 단숨에 뛰어넘는다. 건강한 퀴어 코미디 <여자사람친구>를 통해 비로소 이 메시지는 온전하게 전달된다.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고, 그냥 그 사람, 바로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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