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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05 20:01 수정 : 2016.05.06 13:31

<휴먼다큐 사랑>(문화방송) ‘엄앵란과 신성일’ 편. 사진 문화방송 제공

황진미의 TV 톡톡

<휴먼다큐 사랑>(문화방송) ‘엄앵란과 신성일’ 편이 전파를 탔다. 11년째 감동적인 사연으로 가족애를 일깨워온 프로그램이 40년 별거부부의 사연을 담다니 뜻밖이었다. 문화방송(MBC)은 지난 2월부터 이 부부에게 관심을 보였다. 설 특집 <리얼스토리 눈>은 엄앵란의 암 진단을 계기로 달라진 신성일의 태도를 담았다. <리얼스토리 눈>이 인터뷰를 통해 신성일의 입장을 주로 담은 반면, <휴먼다큐 사랑>은 내레이션을 통해 엄앵란의 입장을 담는다.

엄앵란·신성일은 당대 톱스타로 1964년에 호화 결혼식을 올렸다. 1남2녀를 두었지만, 신성일의 외도로 1977년부터 별거 상태였다. 이혼 없이 가까운 곳에 따로 살면서 행사 때는 다정하게 등장했다. 1980년부터 신성일은 두 번의 총선 낙선과 영화 제작으로 큰 빚을 졌다. 2000년에는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이때 저지른 비리로 2005년부터 2년간 수감됐다. 이후 혼자 지방에 살면서 자신의 외도를 담은 자서전을 내기도 하고, <야관문: 욕망의 꽃>이란 영화를 찍기도 했다. 여든 살에도 여전히 멋진 스타일을 유지한 신성일은 최고의 한량이자 풍운아로 산 셈이다.

반면 최초의 대졸 여배우이자 신세대 여성 배역을 도맡던 엄앵란은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가 됐다. 배우의 길은 시어머니로 인해 막혔다. 그 뒤 남편의 외도에도 이혼하지 않는 배포 큰 아내이자, 남편이 망친 가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 살았다. 지방에서 식당을 하였고, 환갑에 방송으로 복귀하여 출연료와 모델료를 벌었다. 예전 미모를 찾기 힘들 정도로 투박한 할머니가 된 엄앵란이 방송에서 하는 말은 ‘여자가 참아야 한다. 이혼해선 안 된다. 남자의 기를 살려줘야 한다’는 등의 조언이었다. 이런 ‘구린’ 조언은 그의 삶과 겹치며 기묘한 연민과 울화를 자아냈다.

부부 사이엔 남모르는 감정이 있어서, 밖에서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그러나 방송은 이들에게서 원하는 교훈을 추출하기 바쁘다. <리얼스토리 눈>은 “떨어져 지냄으로써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백세시대의 대안적인 부부상”이라며 설레발을 치고, <휴먼다큐 사랑>에서는 뒤늦은 합가를 원하는 신성일의 심정과, 신성일에게 품은 엄앵란의 정을 전한다. 하지만 시청자 입장에서 대안적인 부부상이란 말에 수긍하기도 어렵고, 이들의 합가를 응원하기도 힘들다.

젊은 시절 밖으로 돌던 신성일이 뒤늦게 조강지처 품에 안기는 서사야말로 가부장적 미담의 결정판이고, 엄앵란이 느끼는 애틋함도 극심한 억압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엄앵란에게 모진 소리를 하는 시어머니에게 던진 신성일의 한마디나, 수감 중 건넨 장미 한 송이가 애틋한 건 엄앵란의 삶이 그만큼 척박했기 때문이다. 별거 중인 남편에 대해 “집밥에서 해방시켜주었다”는 엄앵란의 말은 남편과의 삶이 속박이었다는 토로다. 지금도 신성일은 엄앵란 집에 손님처럼 와서 지적을 해대고, 엄앵란은 여든이 넘어서도 집안의 유일한 소득원으로 이혼한 딸과 손주들을 위해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

엄앵란의 삶은 발랄했던 엘리트 여성이 가부장제에 의해 어떻게 짓눌리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그 시절 여배우들의 삶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김지미는 숱한 염문을 뿌리며 네 번 결혼하고 네 번 이혼했다. 윤정희는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결혼하고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다 67살에 영화 <시>를 찍었다. 윤여정은 조영남과 이혼 후 배우로서 빛나는 경력을 쌓고 있다. 윤여정은 결혼생활에 미련 없음을 누차 밝혔지만, 여전히 조영남에게 윤여정과의 재결합을 권하는 농지거리가 전파를 탄다.

엄앵란에게 결혼생활의 조언을 듣고 재결합을 권하는 방송이 보편적인 정서의 반영일까. 아니면 가부장적인 편향의 반영일까. 신성일이 조강지처 품에 안기는 걸 해피엔딩이라 믿는 이에게 묻고 싶다. 만일 신성일처럼 산 여배우가 있었다면 노년에 남편 품에 안기는 서사가 가능했을까. 아니 나혜석처럼 죽기를 각오하지 않는 이상, 그렇게 사는 여배우가 존재할 수나 있었을까.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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