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7.22 10:51
수정 : 2016.11.21 14:59
<굿 와이프>(티브이엔)는 동명의 미국드라마를 리메이크한 법정물이다. 사법제도나 성문화의 차이로 번안이 쉽지 않을 거란 우려가 지배적이었지만, 드라마는 1회 만에 우려를 씻어냈다. 심지어 2회는 원작에 충실한 에피소드였음에도, 실시간으로 벌어진 국내 사건을 일부러 재현한 것처럼 보일 만큼 현실감이 높았다.
원작에서 유래된 탄탄한 극본에 섬세한 연출은 드라마의 품격을 높인다.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 나위도 없다. 전도연이 보여주는 매순간 빛나면서도 과하지 않은 연기는 왜 전도연이 최고의 배우로 손꼽히는지 알게 한다. 유지태의 묵직하면서도 상대를 집어삼킬 듯한 집중된 표정도 일품이다. 움직임이 적은 와중에 뿜어내는 복잡한 감정은 드라마가 품고 있는 비밀의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가령 면회 온 아내를 대하는 표정과 성매매 여성을 겁박할 때의 표정은 완전히 다른데, 이러한 차이는 그가 진짜 함정에 빠진 검사인지 아니면 추악한 비리검사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기대 이상의 호연을 펼치는 나나를 비롯해 윤계상, 김서형, 김태우 등이 모두 개성을 뽐낸다.
<굿 와이프>는 검사인 남편이 최악의 스캔들로 구속되면서, 전업주부이던 아내가 변호사로 일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매회 독립된 사건의 해결을 보여주는 법정드라마이자, 남편이 연루된 큰 사건의 의혹을 밝히는 서사를 갖는다. 드라마의 가장 큰 차별점은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다. 사법연수원의 우등생이었지만 결혼 후 15년간 전업주부로 살다가 남편의 추문에 의해 사회로 나온 여자. 이러한 설정은 풍부한 감정과 문제의식을 품는다. 남편에 대한 배신감, 15년간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다는 무력감, 위기에서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여기저기서 공격당하는 남편에 대한 일말의 연민, 어쩌면 남편이 함정에 빠진 것일 수도 있다는 혼란스러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먹고살아야 한다는 절박함과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는 불안감 등이 교차한다. 그런 의미에서 <굿 와이프>는 멜로드라마이자 여성의 성장드라마다.
드라마가 보여주는 젠더적 문제의식은 단순하지 않다. 만약 김혜경(전도연)이 남편에게 배신당한 즉시 명쾌하게 이혼한 후, 여성들이 주도하는 로펌에서 성공하여 ‘난 누구의 아내가 아니라, 변호사 김혜경이다’라고 선언하는 이야기를 담았다면 단순한 여성주의 텍스트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그런 일차원적인 길을 가지 않는다. 김혜경은 사회에 진출한 후 끊임없이 이태준(유지태)의 아내로 소환된다. 드라마의 첫 장면인 남편의 기자회견장에서 그의 결백을 증명하는 용도로 옆에 서 있던 김혜경. 이후 사람들이 알아보고 기억하는 것은 ‘이태준의 아내, 김혜경’이다. 그가 맡는 사건도 ‘이태준의 아내’라는 지위와 무관하지 않다. ‘고통받는 아내’의 상징으로 소비되든, 이태준의 인맥이 힘을 발휘하든 김혜경에게 ‘이태준의 아내'는 중요한 스펙이다.
또한 그가 로펌에 취직할 수 있었던 것은 서중원(윤계상) 덕분이다. 그는 김혜경에게 기회를 주고, 사회적 공격으로부터 방어해준다. 물론 그리하는 이유는 김혜경의 실력을 기억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연정 때문이다. 김혜경이 원칙에 충실하며 공감능력이 뛰어난 변호사로 성장하고 있지만, 그 배후에는 이태준과 서중원이 있다. 이러한 서사는 어쩌면 반여성주의적이라는 불만을 품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드라마는 남성권력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으면서, 그 안에서 여성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현실 사회에서 여성이 성장하고자 할 때, 진공의 장에 나서는 것이 아니다. 남성권력이 여전히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것과 맞서거나 때로는 활용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조금씩 넓혀나가야 한다. 김혜경은 1회에선 자신이 맡은 사건에 대해 이태준이 언급하는 것에 화를 냈지만, 2회에선 남편의 인맥을 활용하여 재수사를 의뢰한다. 드라마에서 김단(나나)이 여러 인맥과 매력을 활용하여 정보를 빼오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국과수 직원에게 정보를 제공받고 하룻밤을 약속한다. 이처럼 자신의 일을 위해 자신의 모든 능력을 공세적으로 활용하는 여성상은 새롭고 진취적이다.
원작에서 김단의 캐릭터는 양성애자였다. 또한 전도연 캐릭터의 동생으로 게이가 등장하였다. 한국판에서도 이러한 설정이 그대로 이어질지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누가 봐도 게이인 이혼 전문 변호사를 등장시킨 것으로 보아, 굳이 설정을 바꿀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생생한 여성주의적 문제의식을 담은 드라마이자, 다양한 성적 지향을 담은 명품 드라마를 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chingmee@naver.com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