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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2.02 14:11 수정 : 2016.12.02 21:52

[토요판] 황진미의 TV 톡톡

<수저와 사다리>(에스비에스)는 3부작 다큐멘터리로, 제목이 암시하듯 ‘수저 계급론’과, ‘계층이동 사다리’가 사라진 한국 사회를 조명한다. 1부 ‘드림랜드-네버랜드’에서는 경제적 불균등의 핵심인 부동산 문제를 다루고, 2부 ‘닭 값과 달 값’에서는 임금격차와 고용 문제를 다룬다. 3부 ‘모두의 수저’에서는 소득재분배와 복지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기본소득을 짚는다. 제작진은 내용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였다. 1부에서는 개그맨 김기리와 함께 드라마와 야외 버라이어티 형식을 가미했다. 2부에서는 치킨 프랜차이즈 윤홍근 회장의 일일 알바 체험을 관찰예능의 형식으로 곁들였다. 3부에서는 보드게임의 형식을 취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시청자의 흥미를 유발할 뿐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을 구조적으로 이해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1부에서는 월급 3분의 1을 월세에 쏟아붓는 직장인이 자영업자가 되었다가 한국에서 가장 싼 땅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한국인의 72%는 땅을 소유하지 못했으며, 1%가 55%의 땅을 소유하고 있다. 강남 개발이 시작되었던 40년 전부터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자장면 가격이 25배 오르는 사이 평균 땅값은 125배가 올랐다. 그중에서 재벌이 가진 땅은 더 많이 올랐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전국 평균 지가가 6.8% 상승한 데 비해 재벌 소유의 땅은 115% 올랐다. 사정이 이러니 40년 전에 강남에 땅을 샀으면 부자가 되었을 거라느니, 교통 좋고 개발 호재가 있는 땅을 사야 한다는 말은 ‘뻔한 말씀’일 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부동산 투자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것을 김기리의 우스꽝스러운 고생길이 잘 알려준다. 직장인은 월급을 집세로 바치고, 자영업자는 수입을 임대료로 바치다가 가게에서 쫓겨나는 동안, 1조원의 땅을 소유한 ‘토지왕’이나 68억원의 부동산을 가진 6살 어린이의 재산은 계속 늘어난다. 이들에게 세금을 걷기 위해 만들어졌던 종부세는 크게 후퇴하였고, 지금은 흡연자가 내는 담뱃세가 9억원짜리 아파트 소유자의 재산세에 맞먹는다.

2부에서는 치킨 공화국 대한민국의 임금과 고용의 난맥상을 짚는다. 윤홍근 회장의 월급은 아르바이트생 월급의 무려 138배다. 위험한 오토바이로 치킨을 배달하는 사람은 5개의 아르바이트를 뛰며 대학원에 다닌다. 공부나 결혼은 더 이상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되지 못한다. 우수한 학력과 스펙을 갖추어도, 30대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사람은 취업 가능 인구의 2%다. 중소기업의 임금은 대기업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들은 고용을 늘리지 않고, 비정규직과 하청 일자리만 늘어났다. 외환위기 때 직장을 잃고 지금은 닭을 튀기는 중년들의 모습은 지난 20년간 붕괴된 중산층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제작진은 자신의 연봉을 삭감하여 직원들의 임금을 획기적으로 높여준 미국의 댄 프라이스 회장의 사례를 통해, 임금격차를 줄이는 것이 직원들의 삶을 향상시키고 생산성도 높이는 선순환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20년간 줄기차게 외쳐온 낙수효과는 거짓이었으며, 오히려 분수효과를 논해야 한다는 결론은 인상적이다.

3부는 ‘블루마블’ 게임을 변형한 ‘수저마블’ 게임을 통해, 기본소득의 개념을 체험시킨다. 표창원, 이준석 등 정치인을 비롯하여 각계의 인물 8명을 초대해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의 패를 고르게 한다. 등급에 따라 땅을 사게 하고, 주사위를 던져 말을 진행시킨다. 남의 땅에 말이 들어가면 임대료를 내야 한다. 주사위의 우연은 공평하지만 출발선이 다른 상태에서 시작된 게임은 곧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다. 흙수저는 금방 빚쟁이가 되고, 게임의 의욕을 상실한다. 여기서 수익이 날 때마다 세금을 걷고, 모인 세금을 똑같이 나누어 주면 어떻게 될까? 그런다고 수저의 계급이 바뀌진 않는다. 하지만 자포자기에 빠졌던 흙수저들은 희망을 갖게 되고, 은수저들도 계층상승의 가능성을 꿈꾸게 된다. 제작진은 참가자들에게 게임에 대한 소감과 함께 기본소득에 대한 견해를 묻는다. 또한 국내의 성남시나 외국에서 도입한 기본소득 제도의 사례를 소개하며, 기본소득에 대한 막연한 오해와 우려를 씻어준다. 갈수록 일자리가 줄어드는 사회에서 기본소득이 복지의 행정비용이나 낙인효과, 노동기피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획기적인 복지정책이자 내수 진작으로 경제에 활력을 주는 정책임을 논리적으로 납득시킨다.

박근혜 게이트로 분노에 차 있는 시청자들에게 <수저와 사다리>는 지금의 위기가 새로운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깨닫게 해준다. 박근혜 게이트가 단지 개인의 비리가 아니라 재벌과 국가권력이 공모해온 박정희 패러다임의 신자유주의적 변형이자 종말태이며, 경제민주화가 단지 정치권의 사탕발림이 아니라 마땅히 이루어야 할 시대적 과제임을 자각할 때,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1987년에 이룬 절반의 민주화를 완수하고, 1997년부터 질곡에 빠져든 양극화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을 함께 꿈꾸어야 한다. 진정한 민주화는 아직 이루지 못했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chingm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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