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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2.17 15:19 수정 : 2017.02.17 21:12

[토요판] 황진미의 TV톡톡

<신혼일기>(티브이엔)는 구혜선·안재현 부부의 일상을 담은 관찰 예능프로그램이다. 선남선녀의 신혼을 그린다는 점에서 <우리 결혼했어요>(문화방송)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우리 결혼했어요>가 가상부부를 보여주는 데 반해 <신혼일기>는 실제 부부의 삶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보다는 고립된 장소에 두 사람을 입주시키고, 한가롭게 밥해 먹는 일상을 그린다는 점에서 나영석 피디의 전작 <삼시세끼>(티브이엔)와 유사하다.

<신혼일기>는 볼거리와 잔재미가 빼곡하다. 일단 구혜선과 안재현의 아름다움이 볼거리이다. 이들은 단순한 미남미녀가 아니라, 상당한 예술성과 행복한 삶을 만들어가는 재능을 지닌다. 여기에 개 세 마리와 고양이 세 마리가 뿜어내는 매력도 상당하다. 강원도 인제군 산골의 절경도 멋지고, 예술적으로 리모델링된 한옥을 뜯어보는 묘미도 쏠쏠하다. 제작진의 장인 정신도 돋보인다. 자칫 밋밋해 보일 수 있는 장면에 재치 있는 편집과 자막 입히기로 잔재미를 더했다. 미남미녀, 동물, 풍경, 음식이 공존하는 풍성한 상차림에, 실제 부부의 삶을 담다 보니 관계에 대한 성찰도 포함된다.

<삼시세끼>가 경치 좋은 곳에서 남자들끼리 노닥거리며 밥해 먹는 일상을 통해 동성 사회적이고 대안 가족적인 유토피아를 보여주었던 것에 비해, <신혼일기>가 이성애 부부의 자족적 삶을 이상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퇴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차줌마’(차승원)와 유해진에게 안사람-바깥사람 놀이를 시킨 것은 이성애 중심주의를 환기시키는 동시에 해체시키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혼일기>는 이성애 중심주의를 강화시키는 퇴보한 텍스트인가? 그렇지 않다. 가부장적 결혼 모델을 섬세하게 해체시키는 텍스트다.

구혜선·안재현 부부는 여성 주도적 관계이다. 구혜선은 안재현에게 3년 연상이고, 배우 경력도 한참 선배이다. 2015년 드라마 촬영장에서 안재현을 처음 본 구혜선은 안재현이 열 살은 어린 줄 알았다고 한다. 기습적인 첫 키스를 감행한 것도 구혜선이고, 결혼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도 구혜선이다. 신혼생활에서 방귀 트기를 비롯하여 일찌감치 민낯을 보이거나 망가지는 장난을 치는 것도 구혜선이다. 두 사람은 서로 반말을 쓰지만, 안재현이 구혜선을 3인칭으로 지칭할 때 존댓말이 섞이거나 ‘구느님’이라 부르는 것도 눈에 띈다. 안재현은 구혜선의 기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눈치를 살핀다. 이러한 관계는 <우리 결혼했어요> 등에 흔히 등장하는 여자에게 애교나 내숭을 요구하는 남성 중심적인 커플 문화와 사뭇 다르다.

2회 후반부에 가사노동을 둘러싼 두 사람의 갈등이 등장한다. 결혼 초 가사노동의 90%를 감당하던 구혜선에게 설거지를 마친 안재현이 “내가 여보의 일을 도와주었다”며 생색을 냈다고 한다. 구혜선이 가사노동의 목록을 세분해서 보여주며 문제를 제기하자, 안재현은 “여보가 원해서 하는 일인 줄 알았다. 너무 공격적으로 말한다. 나는 행복했는데 최악이라고 말하면 어떡하나”는 등의 방어적인 말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구혜선은 안재현에게 화를 내거나 포기하지 않고, 차분히 설득하여 안재현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이제 안재현은 가사노동을 자신의 일로 여기고 스스로 한다. 이는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로 대표되는 ‘남편 길들이기’와는 다르다. 흔한 ‘남편 길들이기’에서 관계의 주도권은 남자에게 있으며, 여자는 온갖 애교와 감정노동을 통해 남편의 동의와 시혜를 이끌어낸다. 그러나 구혜선은 관계의 주도권을 쥔 상태에서 토론을 통하여 안재현의 각성을 끌어낸다.

<신혼일기>는 여성 예술가의 결혼이라는 주제로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가부장제하에서 여성 예술가들은 결혼생활과 예술활동을 조화시키기 힘들다. 흔히 재능 있는 여성들이 우월적 지위의 남성 예술가와 결혼하여 남편의 명성에 묻히거나 뮤즈로 소비된다. 또는 부자와 결혼하여 ‘트로피 신부’가 되거나, 전문직 남성의 아내라는 안정된 삶으로 자신의 재능을 맞바꾼다. 이런 경우 여성의 재능은 착취되거나 말살되거나 억압된다. 우울증을 거듭하다가 결혼생활은 파국을 맞고, 급기야 삶이 황폐해진다. 무수한 실패의 역사를 딛고, 최근 이와 다른 선택을 하는 여성 예술가들이 생겨났다. 이효리와 구혜선은 자신보다 명성이 높지 않은 남성 예술가와 결혼하여, 소박한 결혼생활과 함께 독자적인 활동을 이어간다. 여성의 재능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남자를 만나, 서로 존중하고 영감을 주고받으며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것은 여성 예술가의 활동을 오래 지속시킨다. 이는 비단 여성 예술가에게 국한된 이야기도 아니다. 많든 적든 나의 재능과 자아를 지키기 위해서는 가부장적인 욕망에 포획되지 않고, 진정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결혼이 무엇인지 알아야 된다. 여성들이여, 죽거나 미치지 않으려면, ‘잘난’ 남자와의 결혼을 꿈꾸지 말고, 진정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결혼을 택하라. 구혜선처럼, 또 이효리처럼.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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