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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5.12 20:47 수정 : 2017.05.12 21:15

황진미의 TV 톡톡

<개인주의자 지영씨>(한국방송2, 5월8~9일 방송)는 2부작 드라마로, 밀도 높은 전개와 감수성 짙은 대사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간호사인 지영(민효린)은 “진정한 관계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균형 사이에 존재한다”고 믿으며 타인과 거리를 둔 채 살아간다. 감정소모가 싫어서 동료들과 어울리지 않으며, 혼자 밥 먹고 혼자 영화를 본다. 가끔 연애도 하지만, 깊은 속내를 털어놓지 않아 오래가지 못한다. 한편 옆집의 벽수(공명)는 관계의존적인 남자이다. 심하게 외로움을 느끼고, 다른 사람을 통해 그 외로움을 메우려 한다. “네 외로움 때문에 이용당하는 느낌”이라면서 떠나는 애인에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매달린다. 직장에서는 ‘진상’이나 ‘호구’로 통하고, 사회관계망에 행복한 사진을 올리며 ‘좋아요’와 댓글에 집착한다.

상반된 성격의 두 사람이 각자 연인과 헤어지는 과정에서 벌어진 소동 때문에 경찰서에서 만난다. 이후 치근거리는 벽수의 인사를 한사코 거부하던 지영은 스토커처럼 찾아온 옛 애인을 피하느라 벽수의 신세를 지고 만다. 이후 두 사람은 급속히 가까워진다. 충동적인 하룻밤을 보내고, 반동거 상태에 이른다.

드라마는 여느 로맨틱코미디와 달리, 달달한 연애 과정보다 이들의 내면에 집중한다. 지영은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 이혼한 부모로부터 일찌감치 독립한 뒤 의절한 채 살아간다. 엄마는 남편의 외도로 입은 상처를 어린 지영에게 쏟아내며 정서적으로 학대하였다. 벽수도 이혼 가정의 아들이다. 더욱이 파양된 적이 있는 입양아로, 가정 안에서 차별받으면서도 사랑받기 위해 ‘호구짓’을 자청해왔다. 이들의 외로움이 연애로 치유될 수 있을까. 드라마는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지영이 그어 놓은 자아의 경계를 벽수가 침범하자, 지영은 이별을 선언한다. 둘은 험한 말을 뱉고 헤어진다. 이후 혼자 있는 시간 동안 지영의 내면에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 드라마는 이들의 재회를 보여주며 해피엔딩을 암시한다.

<개인주의자 지영씨>는 제목에서 보듯이 젊은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조명한다. 지금껏 비혼 등 젊은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이야기할 때, 청년실업이나 삼포세대 등 경제적인 접근이 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단지 경제적인 문제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보다는 새로운 감성적 주체가 형성된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지영은 부모의 이혼을 겪은 후, 개인주의자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다.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이혼을 직간접적으로 겪으면서 자란 20~30세대에게 ‘결혼의 신성한 가치’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보다 자신이 수용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택하고 나름의 논리와 태도를 보강한다. 물론 그러한 삶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드라마에서 보듯 우울증, 불면증, 심신증(과민성 대장증후군) 등 임상적인 증상을 지닌다. 하지만 이들의 삶 전체를 병리적으로 볼 수는 없다. 새롭게 구성되는 개인주의자의 삶을 인정할 필요가 있으며, 비난하거나 동정하거나 치유의 대상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떠들썩한 친목과 교류를 거부하고, 결혼의 서사 바깥에서 조용하고 자족적인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택한 이념이자 삶의 형태로 인정할 수 있으며, 여기에 수반되는 임상 증상들은 자기 돌봄의 기술과 함께 따로 논의되어야 한다.

드라마는 새로운 감성적 주체인 ‘개인주의자 지영씨’에게 공감하면서도, 치유되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극 초반에 만만치 않은 정신적 문제를 지닌 것으로 그려졌던 벽수에게는 임상적 시선을 드리우지 않는다. 뒤로 갈수록 오히려 벽수가 지영을 치유할 수 있는 믿음직한 존재인 양 취급된다. 하지만 과연 벽수가 그럴 수 있을까. 지영의 일기를 훔쳐보고, 의절한 지영의 가족을 만나고, 지영의 상담의사를 찾아가는 오지랖을 떨면서, “널 사랑해서 그랬어”라고 자기행동을 정당화하는 벽수. 그런 벽수가 연애 과정에서 다른 민폐와 집착을 보이진 않았을까. 지영이 이별을 선언했을 때, 안전하게 이별해주었을까. 두 사람의 연애 전사에서 보았던 매달림이나 스토킹은 없었을까. 정 많고 사람 좋은 얼굴을 한 벽수가 폭력적으로 돌변할 가능성은 없을까. 달라진 지영이 벽수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났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드라마 2회가 방송되던 시각 모든 지상파 채널에서는 개표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즉 개표방송 이외에 볼 수 있었던 유일한 프로그램이 <개인주의자 지영씨>였다. 한동안 사회고발극이 봇물을 이룬 가운데, 개인의 내면에 천착하며 새로운 세대의 감수성과 관계의 윤리를 그린 드라마가 하필 그 시간에 방송된 것도 시대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정권교체 이후 집중해야 할 논의와 전선이 무엇인지를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오유남’(오늘의 유머 사이트의 남성)과 ‘트페미’(트위터 페미니스트)의 로맨스는 가능할까? 불가능하다면 불화의 본질은 무엇일까. ‘사람이 먼저’인 세상에서, 사람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고양이 같은 여자도 행복할 수 있을까.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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