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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03 18:20 수정 : 2017.11.04 18:08

[황진미의 TV 톡톡]

<당신이 잠든 사이에>(에스비에스)는 예지몽의 판타지를 곁들인 로맨틱 코미디이자, 검사가 주인공인 법정드라마다. 배수지, 이종석 주연의 최강 비주얼을 뽐내는데다 작가의 세계관이 돋보인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스비에스, 2013년) <피노키오>(에스비에스, 2014년)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박혜련 작가와 이종석 주연 외에도 공통점이 많다. 특별한 능력이나 증상을 지닌 주인공을 내세워 신문 사회면에 나올 법한 범죄사건을 그리되 정의와 인간애를 품은 윤리적 선택들을 통해 인물의 성장과 더 나은 세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드라마에서 예지몽은 미래를 바꾸는 단초가 된다. 지금껏 타임워프를 활용한 무수한 텍스트에서 대개 결론은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영화 <열한시>(2013년) <슬라이딩 도어스>(1998년) 등 바꾸려는 노력이 오히려 정해진 미래를 초래하거나, 사소한 것들을 바꾸어도 큰 줄기는 바뀌지 않는다는 운명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런 대세에 반기를 든 것이 <시그널>(티브이엔, 2016년)이었고, 비슷한 시기에 나온 영화 <시간 이탈자>(2016년)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2016년)도 미래가 바뀔 수 있음을 암시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예지몽으로 본 비극을 막지 못해 절망하던 남홍주(배수지)가 자신처럼 예지몽을 꾸는 정재찬(이종석)과 한우탁(정해인)을 만나 함께 미래를 바꾸어 나가는 것을 보여준다.

예지몽은 극의 형식에도 기여한다. 우선 주인공들의 연결고리로 작용한다. 이들은 꿈을 통해 만났고, 꿈이 제시한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협력하면서 로맨스를 쌓아간다. 드라마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나 <피노키오>에 비해 전체적인 긴장이 느슨하고 옴니버스 식으로 사건을 나열하는 구성을 지닌다. 이는 새로 유입되는 시청자들이 지난 줄거리를 몰라도 극을 따라가게 해준다. 여기서 예지몽은 앞으로 펼쳐질 에피소드의 예고편이자 발제문으로 기능한다. 짧지만 강렬한 클립화면을 통해 에피소드들 사이에 긴장을 불어넣으며, 사건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또한 꿈이 제시한 길을 가지 않기 위해 인물들이 무엇을 바꾸는지 집중하게 만드는 관전 포인트를 제공한다.

예지몽은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뻔한 결정들’이나 ‘판에 박힌 판단들’의 은유로 읽힌다. 드라마는 관습적인 판단들을 넘어 인물들이 어떤 새로운 길을 찾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윤리적인 판단을 숙고하게 만든다. 가령 매번 법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가정폭력범을 늘 하던 대로 풀어주었을 때 어떤 비극이 초래되는지 꿈을 통해 예시된다. 그러나 피해자가 인질처럼 잡혀 있는 가정폭력사건에서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을 경우, 검사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한편 대중의 이목이 집중된 스포츠 스타 사망사건에서 유일한 피의자에게 범인으로 확증할 만한 증거가 없을 때 검사는 어찌 해야 될까. ‘살인자를 처벌하라’는 공분이 들끓어 기소하지 않으면 검사가 테러를 당할 수 있음이 꿈으로 예견될 때 검사는 일단 피의자를 기소해야 할까.

드라마는 동료 검사를 통해 현실적인 판단의 예를 보여준다. 그는 가정폭력범 처벌의 판단을 피해자에게 맡기라고 권한다. 가해자를 처벌하고 가정을 깰 것인지 맞으면서도 가정을 유지할 것인지 피해자가 선택할 일이라는 것이다. 스포츠 스타 사망사건에 대해서도 일단 기소하여 국민적 비난에서 벗어나라고 조언한다. 법정에서 무죄 판결이 나면 원성은 판사를 향할 것이니 빨리 사법부로 공을 넘기라는 것이다. 이런 조언은 일견 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는 자신이 져야 할 판단의 책임을 피해자와 판사에게 떠넘기는 행위다. 재찬은 절충이나 중립이 아닌, 정의를 향한 새로운 길을 간다. 그는 가정폭력 현장에 개입해 피해자를 구조하고 경제적인 두려움 없이 이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회유와 협박에 시달리는 피해자의 판단을 자유로운 선택으로 보기 어려우며, 피해자가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도움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스포츠 스타 사망사건에 대해서도 사고사의 증거를 찾아내 피의자의 무고함을 밝히고 대중의 분노를 가라앉힌다. 하지만 수사 결과를 납득하지 못한 유족이 검사를 공격하는데 이에 대해서도 유족의 입장을 헤아려 위로의 말을 전함으로써 진정한 화해에 도달한다.

홍주와 재찬은 13년 전 탈영병에게 아버지를 잃은 아픔을 공유한다. 분노와 자책으로 괴로웠지만 이들은 가해자 가족을 용서하고 자책의 그늘에서도 벗어난다. 법의 허점을 이용해 살인자도 무죄로 만드는 ‘악마의 변호사’가 피해자의 분노를 부추기는 것과 대조적이다. 드라마는 법이 언제나 정의로울 수는 없지만 법이 정의를 지향해야 한다는 당위와 사법시스템에 대한 근원적인 믿음을 설파한다. 쏟아져 나오는 누아르물과 현실의 추문들을 통해 사법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지금, 공동체적인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때마침 도착한 텍스트가 아닐 수 없다. 홍주 혼자 예지몽을 꾸었을 때 미래를 바꿀 수 없었지만, 함께 꿈꾸고 토론하고 협력함으로써 미래를 바꿀 수 있게 되었음에 주목하자. 혼자 꾸는 예지몽은 악몽이지만 함께 꾸는 예지몽은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된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힘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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