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3.10 05:00
수정 : 2018.03.1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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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비에스(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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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의 TV 톡톡] SBS ‘키스 먼저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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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비에스(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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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먼저 할까요>(에스비에스)는 코믹함과 먹먹함을 동시에 전하는 드라마다. 일단 캐릭터에 꼭 맞는 배우들의 매력이 일품이다. 능청스러운 말투의 김선아가 툴툴대며 귀여운 속내를 드러내는 것도 웃기거니와, 시종 음울한 표정의 감우성이 냉랭한 어투로 로맨틱한 대사를 읊조릴 때 블랙코미디적 웃음이 터진다. 거기다 “멜로 눈깔”이니 “은둔형 도토리”니 “고수야? 고자야?” 같은 언어유희도 킬킬거림을 더한다. 하지만 드라마가 품고 있는 회한은 결코 가볍지 않다.
드라마는 ‘리얼 어른 멜로’를 표방한다. 어른들의 세계를 리얼하게 조명한다는 뜻이니, 반대 개념으로는 ‘순정 청춘 멜로’쯤 되겠다. 중년 로맨스를 다룬 드라마들이 꽤 있었지만, ‘어른 멜로’를 내세우기는 처음이다. ‘애들은 가라. 인생을 좀 살아본 어른들만 느낄 수 있는 정서를 말해보련다’는 선언이 담긴 셈이다. 과연 그러하다. 46살 이혼녀 안순진(김선아)과 50살 이혼남 손무한(감우성)의 괴상한 소개팅 자리에서는 “나랑 일곱 번만 하자”는 말이 튀어나오고, 만난 지 몇 번 만에 불면증을 이기기 위해 “자러 올래요?”라는 제안이 성사된다. 훨씬 성애적이기도 하고, 금방 성애적인 것 너머에 도달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년 ‘돌싱’들의 연애가 그리 쉽진 않다. 청춘 남녀에 비해 고려해야 할 변수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살아온 연혁만큼 사회경제적 상태나 이전 결혼으로 형성된 가족, 건강 상태 등이 천차만별이다. 이런 복잡한 변수를 제외한 채 오직 두 사람만의 연애를 달달하게 그릴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리얼 어른 멜로’로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 안순진과 손무한은 세 겹의 층위로 얽혀 있다. 첫째는 친구 부부가 소개한 관계이고, 둘째는 집, 딸 등으로 얽힌 악연이고, 셋째는 과거의 인상적인 마주침이다. 첫번째 층위에서 안순진은 모처럼 빼입고 나간 소개팅 자리에 손무한이 등산복 차림으로 나타나자 막말을 퍼붓는다. 하지만 손무한이 수백억대 부자라는 친구의 말에, 그를 유혹하기로 작심한다. 하지만 두번째 층위의 관계로 일이 꼬인다. 같은 빌라 위·아래층에 사는 이들은 누수 문제로 한차례 시비를 겪었다. 게다가 손무한이 욕실과 옥상에 갇힌 일에 안순진은 일말의 책임이 있다. 여기에 손무한의 딸이 안순진과 무지막지한 몸싸움을 벌이면서 악연이 더해진다. 그러나 손무한에게는 안순진에 대한 애잔함과 미안함이 있다. 바로 세번째 층위의 관계 때문이다. 드라마는 매회 에필로그처럼 ‘그는 간직하고 그녀는 잊었던’ 과거 장면을 삽입한다. 배우자의 외도, 이혼 등 인생의 고비를 겪을 때마다 손무한은 자신보다 더 극악한 상황에서 울부짖는 안순진을 목격한다. 드라마는 과거 사연을 조금씩 공개하며 궁금증을 유발하는데, 안순진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결정적 사건인 딸의 죽음에 손무한이 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음이 암시된다.
이런 세 층위의 관계가 얽혀들면서 코믹과 회한이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된다. 첫번째 층위의 관계가 속물적 욕망과 유혹의 기술이 오가는 로맨틱 코미디의 상황이라면, 두번째 층위의 관계에서 ‘구질구질 리얼한’ 중년의 일상이 드러난다. 그리고 세번째 층위의 관계에서 한 인간의 내면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명이 담긴다. 두번째 층위와 세번째 층위의 관계가 불행과 슬픔을 바탕에 깔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안순진의 집은 버리지 못한 물건들과 차압 딱지로 그득하며, 그마저도 곧 집을 빼앗길 판이다. 이는 안순진의 상태를 고스란히 대변한다. 그는 어린 딸을 잃고, 남편을 친한 후배에게 빼앗겼으며, 소송으로 인한 거액의 빚을 떠안은 상태에서 실직했다. 더 끔찍한 것은 재혼한 전남편과 완전히 절연하지도 못한 채, 과거와 더불어 살고 있는 것이다. 반면 손무한의 집은 깔끔하다. 그러나 고독과 무기력의 기운이 서려 있다. 그가 제집 욕실에서 조난당한 일은 고독사에 대한 은유다. 또한 유일한 가족인 노견의 불치병은 그의 상태를 암시한다. 손무한은 십년 만에 자신을 찾아온 딸을 냉정하게 내치고 눈물짓는다. 안순진 딸의 사망에 모종의 죄의식을 갖는 듯한 손무한의 서걱거림과 안하무인의 딸이 보여주는 파탄적 행태는 손무한의 고독과 관계의 피폐함을 드러낸다. 그가 한줌의 물기도 없는 메마른 목소리로 “밤이 가장 힘들잖아요” “우선 지금은 키스 먼저 합시다”라 말할 때, 굉장한 부조화와 처연한 페이소스가 와르르 밀려온다. 안순진은 손무한의 거리두기와 무기력을 성욕의 부재나 성적 불능으로 받아들이지만, 그보다 훨씬 포괄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바로 죽음이다. 손무한이 불치병이든 아니든, 육신의 쇠잔함과 시간의 유한함을 무섭게 자각시키는 죽음이야말로 ‘리얼 어른 멜로’가 품어야 할 핵심 의제인 것은 분명하다.
드라마는 돈과 섹스에 대한 동상이몽의 코미디를 표면에 내세우지만, 그 안에는 쓰디쓴 인생의 고통과 스산한 고독과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냄새를 품은 진중한 중년 로맨스가 담겨 있다. 심각한 척하지만 웃기는 드라마는 많이 봤어도, 웃기는 척하지만 심각한 드라마는 흔치 않다. 작가의 필력과 배우들의 신공에 감탄하며 보게 되는 이유이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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