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0.20 06:00
수정 : 2018.10.20 17:49
황진미의 TV톡톡
<최고의 이혼>(한국방송2)은 2013년에 방영된 일본 드라마의 리메이크 작으로, 두 쌍의 부부가 겪는 애증의 쌍곡선을 보여준다. 한국판은 원작의 전개를 충실히 따르면서, 몇 가지 차이를 통해 원작의 문제의식을 증폭시킨다. 주인공들의 캐릭터나 배우들의 연기가 인물들의 개성을 훨씬 두드러지게 하는데다, 주변 인물들을 통해 여성주의적 맥락을 환기시킨다. 그 결과 원작이 품고 있던 미묘한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드라마는 지극히 현실적인 부부의 일상을 담지만, 매회 놀라운 반전으로 예측불가의 전개를 보인다. 첫 회(회차 쪼개기 편성 기준)는 결혼 3년차인 조석무(차태현)가 매사에 덜렁대는 아내 강휘루(배두나)로 인해 결혼생활에 회의를 느낀다는 하소연을 실컷 들려주다, 마지막 장면에서 강휘루가 이혼서류를 건네며 “당신 필요 없어. 후련해”라 말하는 반전을 보여준다. 2회는 조석무가 대학시절 동거했던 진유영(이엘)의 남편이 바람둥이인 것을 알고 걱정해주는 모습을 담다가, 진유영이 “너랑 살 때 행복한 적 없었어. 헤어질 때 네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라 말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3회는 두 부부가 우연히 얽히는 에피소드를 담다가, 세 사람 앞에서 진유영이 조석무와 헤어진 이유를 공개하는 것으로 맺는다. 4회는 강휘루가 조석무에게 품었던 애정을 토로하고 조석무가 재결합을 제안함으로써 봉합의 분위기가 만들어지나 싶더니, “미친 거 아니야? 당신은 당신 자신밖에 사랑하지 않아”라는 강휘루의 단언으로 끝난다.
이런 오락가락한 전개가 뭘 말하려는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있을 수 있다. 혹자는 연신 뒤통수를 얻어맞는 조석무가 억울하고, 두 여자의 말이 자기중심적이거나 히스테리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지금껏 제대로 비판되지 못했던 남성적 습속을 신랄하게 성토하는 중이다. 조석무는 대체 뭘 잘못한 걸까. 이혼을 결심한 이유를 묻자, 강휘루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 몰라도 되는 것”이라 말한다. 조석무는 상대방의 의중이나 감정을 살피지 않고, 끊임없이 설명을 해댄다. 컬링을 하는 강휘루에게 컬링의 물리학을 설명하고, 테디 베어 인형이 생겨 좋아하는 강휘루에게 테디 베어의 유래를 설명한다. ‘맨스플레인’이란 조어에 걸맞은 ‘설명충’인 것이다. 과거에 조석무가 진유영에게 한 말들은 악의가 없었으며, 다만 우연에 의해 최악의 결과를 낳았을 뿐이라고 변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유영의 사연을 몰랐더라도 누군가의 창작물을 거리낌 없이 비웃고,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인육의 맛’을 운운하는 태도는 이미 패륜적인 요소를 품고 있다. 그 패륜적 요소가 진유영의 특별한 사연과 만나서 최악의 결과를 빚은 것이다. 이는 마치 맥락을 무시한 채 ‘팩트’ 운운해대던 ‘일베’의 정서가 세월호 참사와 만나 최악의 ‘어묵 드립’으로 표출된 것과 비슷한 구조를 갖는다.
조석무는 권위적이거나 폭력적인 남성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게 나쁘다. 상대방의 맥락을 몰라도 끊임없이 논평할 수 있다고 믿는 무심함도 일종의 권력이다. 이처럼 ‘미묘하게 나쁜 남자’를 영화 <엽기적인 그녀> <신과 함께>등에서 ‘평범하고 착한 남자’를 연기해온 차태현이 비슷한 톤으로 연기하는 것도 절묘하다. 스스로를 착하다고 믿고,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저항해왔다고 믿는 그가 지닌 미시적인 남성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기에 걸맞기 때문이다. 드라마 전체를 장악하는 배두나의 자연스러운 연기도 강휘루가 느끼는 섬세한 문제의식에 설득력을 불어넣는다. 4회의 마지막을 장식한 강휘루의 긴 토로는 자기애에 찌든 남자를 사랑하는 여성의 쓸쓸함과 피상적인 남자의 동의가 불러일으키는 분노를 섬세하게 전달한다.
드라마는 빈약한 남성의 감수성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며 여성주의적 문제의식을 담는 한편, 원작에는 없는 장면들을 통해 최근의 여성주의적 논의들을 녹여낸다. 가령 조석무의 동창이 출세를 과시하기 위해 여직원의 엉덩이를 만지자 조석무가 경멸의 말을 쏟아 내거나, 강휘루의 동생 마루를 찾아온 전 남자친구가 스킨십을 시도하자 경찰을 부르는 장면은 ‘미투 운동’의 여파를 담는다. 한국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여자를 벽에 밀치며 스킨십을 시도하는 장면들은 로맨스로 포장되곤 하였다. 그러나 드라마는 이것이 ‘성추행’임을 분명히 못 박는다. 경찰이 가해남성의 직업과 연인사이였음을 들어 로맨스로 무마하려하자, 마루는 ‘동의가 없었으니 성추행’이라 단호하게 말한다. 할머니(문숙)도 어린 시절의 경험을 말하며, 그때는 ‘성추행’의 개념이 없어서 무엇인지 몰랐지만, 이제는 새롭게 인식된다고 말해준다. 드라마는 책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의 표지를 비추고 “강간”이란 답을 들려줌으로써, 데이트폭력과 성폭력의 개념을 각인시킨다. 일본판과 달리 대단히 세련된 할머니와 레즈비언의 느낌을 풍기는 마루의 친구도 여성들의 다양한 삶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
스스로를 ‘평범하고 착한 남자’라 믿고 여자들의 변덕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에게 반성할 기회를 주고, 최고의 결혼을 꿈꾸는 여성들에게 최고의 이혼을 먼저 맛보게 해주는, 이 시대의 진정한 계몽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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