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1.03 06:00
수정 : 2018.11.03 10:20
[토요판] 황진미의 TV 톡톡
SBS ‘여우각시별’
<여우각시별>(에스비에스)은 공항을 배경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다. 지금껏 승무원의 세계를 보여준 드라마는 많아도, 공항직원을 보여준 드라마는 없었다는 점에서 나름 신선함을 지닌다. 공항은 다양한 직군의 많은 직원들이 일하는 곳이고, 이용객도 많은 데다 별별 일이 다 일어나는 곳이라 소재가 풍부하다. 드라마 속 황당 에피소드들이 실화라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드라마의 로맨스는 굉장히 진부하다. ‘민폐 캔디’ 캐릭터인 여자와 유능하고 냉철하지만 비밀을 가진 남자가 등장하고, 남자가 무수한 사건사고에서 여자를 구해주고 심지어 여자의 엄마도 구해준다. 젠더적 관점에서 너무 퇴행인데, 가령 재벌남이 모성결핍이나 특별한 트라우마를 지녔다는 기본 틀에서 재벌남 대신 ‘고스펙의 능력남’이, 결핍의 항에 ‘팔다리의 비밀’이 들어간 셈이다.
한여름(채수빈)은 입사한지 일 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허둥댄다. 오히려 신입인 이수연(이제훈)이 부서 배치가 빠르단 이유로 사수 역할을 한다. 한여름은 면접 때 쓰러졌지만 열정을 높이 사서 합격되었고, 지방대 가산점을 받았음이 강조된다. 한여름은 부족한 실력을 노력으로 돌파하려는 식상한 캐릭터인데다, 자아존중감이나 통찰력도 부족하다. 반면 이수연은 지력이나 체력은 물론이고 자의식 면에서도 뛰어나다. 그는 한여름에게 부당한 명령에 저항하고 자존감을 지키는 법을 알려준다. “여자라서 어쩌구, 이런 말 듣기 싫잖아요”라는 남자의 가르침에 용기를 얻어 성장하는 여자라니, ‘오빠가 가르쳐준 페미니즘’이 따로 없다. 로맨스의 주도권도 완전히 남자에게 있다. 면접 날 교통사고에서 구해준 남자임을 여자가 먼저 알아본 것 같았지만, 그보다 앞서 남자가 여자를 알아보고 3초 만에 사랑에 빠졌다. 그것도 여자의 아버지를 통해 여자의 존재를 미리 알았단다. <시크릿 가든> 등 로맨틱 코미디에서 여자의 (죽은 혹은 헤어진) 아버지가 둘을 맺어준다는 서사는 결혼식순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딸을 사위에게 양도한다는 의식의 재현이다. 먼저 고백하고, 집에 가자 말하고, 키스하는 것도 물론 남자다.
‘우연이 아닌 운명’ 운운하는 진부함에 남성을 절대적으로 우위에 둔 로맨스도 문제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무쇠팔 무쇠다리’ 설정의 활용이다. 드라마는 이 설정을 ‘히어로’ 와 ‘장애’의 이중적인 의미로 쓴다. 드라마는 초반에 마치 히어로 물처럼 여자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괴력을 발휘하는 남자를 여러 번 그렸다. 흡사 <600만 불의 사나이>가 연상되는데, 이는 유구한 소년(덜 자란 남성) 판타지의 재현이다. 실제로 남성들 중에는 간혹 맨손으로 유리창을 깨거나 담뱃불을 자기 손에 지져 끄면서, 마치 무쇠팔이라도 되는 양 호기를 부리는 이들이 있다. 남근을 갖지 못한 남성이 꿈꾸는 강철남근의 판타지를 드러내는 행위로 볼 수 있는데, 이런 조악한 상상이 로맨스물에 쓰이다니 민망한 노릇이다.
드라마는 중반으로 갈수록 ‘무쇠팔 무쇠다리’의 장애적 맥락을 드러낸다. 이수연은 12년 전 오토바이 사고로 오른 팔과 오른 다리가 완전 마비되는 장애를 입었지만, 최첨단 웨어러블 보행보조기를 장착하고 재활에 성공한다. 드라마는 이런 사연을 비밀로 그린다. ‘600만 불의 사나이’가 놀라웠던 것은 그 시절 흔치 않은 사이보그적 상상의 산물이었기 때문이고, 그가 비밀스러웠던 것은 특수요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수연의 보조기가 비밀이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인공관절, 인공와우, 인공심장박동기 등이 흔해빠진 시대에 의수의족도 아니고 웨어러블 보조기를 보고 프랑켄쉬타인의 괴물성이나 이질성을 느낄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이수연의 진정한 비밀은 보조기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일개 민간인인 그가 그렇게 비싸고 최첨단의 장비를 장착할 수 있었는가에 있다.
드라마는 이수연이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고 싶고, 시선폭력을 겪고 싶지 않다는 말을 들려준다. 이는 물론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 드라마가 무엇을 하는지 생각하면 한심하다. ‘장애 1급, 보행보조물 착용 중’ 이란 이력서를 내고 입사시험과 인턴을 거쳐 정직원이 된 이수연이 상사의 공연한 문제제기로 퇴사를 결심한다. 그러나 이는 직무와 무관한 병력과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는 상황으로, 유방암 수술을 받고 강제전역 조치된 피우진 중령처럼 인권과 노동권을 걸고 싸워야 될 문제이지, 혼자서 회피할 사안이 아니다. 시선폭력 역시 장애를 비밀로 여기는 게 아니라, 공개되어도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인식을 바꾸어야 없앨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전동휠체어를 탄 이수연의 자살기도를 그리고 장애인의 성공적인 재활과 첨단의 보조기도 감추어야 할 수치로 그릴 만큼, 장애를 절망으로만 표현한다. 앞으로 장애인과 노인을 위한 생체기술은 점점 발달하여, 보조기나 의수의족은 물론 신체의 일부를 이루는 사이보그형 보철물들도 많아질 것이다. 이를 전혀 이질적으로 보지 않고,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들도 일상과 직업 활동을 잘 영위하는 모습을 그리지는 못할망정, 장애를 수치로 여기는 시선을 그대로 둔 채 보조기를 히어로물의 장치로 써먹다니! 제발 장애인을 그만 우롱하고 장애혐오를 멈추기 바란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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