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기획] 부끄러운 기록 ‘아동 학대’ ③ 생존
맡길 곳 없는 아이들
재석이는 매미다. 한번 붙으면 좀체 떨어지지 않는다. 조심스런 탐색도 없다. 이 사람이다 싶으면 금세 달라붙는다. 엄마, 아빠 아니면 낯을 가리는 여느 다섯살 아이들과 조금 다르다.
세라는 힘센 사람인 척한다. “조용히 해”, “가만히 있어”, “기다려”. 일곱살 꼬마가 누구한테 배웠을까. 권위자 흉내를 잘도 낸다.
2003년 6월9일과 10일, 두 오누이를 상담한 선생님이 남긴 놀이일지다. 선생님의 눈에 비친 재석이는 “그저 안전하게 딱 붙어 있을 상징적 존재를 찾는” 아이다. 세라는 이렇게 기록됐다. “아마도 양육자의 행동을 그대로 모방한 것으로 추측된다.”
쉼터엔 나이가 제각각인 아이 대여섯이 더 있었다. 7월17일 한낮엔 편을 나눠 물총 싸움을 했다. 누군가의 욕설로 싸움이 중단됐지만, 다른 놀이가 이어졌다.
그날 이후로는 놀이일지엔 오누이가 함께 등장하지 않는다. 세라가 선생님의 나이(28)를 듣고서 떠올렸던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 탓이다. 세라 아빠는 스물아홉이었다. 선생님의 나이를 안 날, 세라는 종일 입을 닫았다.
세라와 재석이가 집에 왔다. 한달 만이었다. 새엄마가 둘을 기다렸다. 2002년 9월 무렵부터 두 아이를 학대해왔던 그다. 그해 겨울 오누이는 시퍼런 멍이 들었다. 막대기로 맞았다. 집에 늦게 들어왔다는 이유였다. 폭력은 계속됐지만 아빠는 침묵했다. 실직한 그는 생활비를 버는 아내한테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오누이가 다니는 교회의 전도사가 아이 몸에 난 멍자국을 보지 않았다면, 경찰도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새엄마는 체포됐다.
그제야 아이들은 안전했다. 둘은 쉼터에 보내졌다. 새엄마는 경찰에 “더는 학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덕분에 처벌은 면했다. 8월 말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풀려나자 그도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아이들의 몸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매번 “집에 늦게 들어온다”는 이유였다. 빗자루, 파리채, 나무막대기… 벽에 부딪히고 발로 차인 세라는 병원 이송 중 늑골 골절과 간 파열로 숨졌다. 2004년 2월2일 저녁 8시였다. 동생 재석이는 살아남아 4주간 치료를 받았다.
재석이는 다시 쉼터로 보내졌다. 이번엔 혼자였다. 상담 선생님의 기억과 사진엔 세라 없이 재석이만 재등장한다. 2005년 9월 청계천에 놀러간 재석이는 쉼터 누나, 형들과 사진을 찍었다. 그즈음 남한산성, 경기도 수원의 광교산으로도 소풍을 갔다. 재석이는 속상한 일이 있으면 책상 아래로 들어가서 서럽게 울곤 했다. “모든 아이들이 울긴 하지만, 재석이의 울음은 더욱 슬픔의 농도가 짙고 오래갔다.” 선생님의 기록이다.
재석이는 이제 열일곱이다. 쉼터에서 쭉 자랐다.
2003년, 우리 사회는 세라와 재석이를 새엄마와 아빠한테 너무 쉽게 내줬다. 그 뒤 ‘안녕한지’ 제대로 살피지도 못했다. 다시 격리했지만, 때는 너무 늦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이를 보호하지 못했고, 경찰과 검찰은 가해자한테 교정 없이 관대한 처분을 내렸다.
보호시설 격리뒤 한달‘학대 않겠다’ 서약서만 믿고
부모에 되맡겨져
주검으로 돌아온 아이 10명 중 3명만 격리보호
7명은 여전히 가해자와 생활
분리하더라도 시설 부족
학대 아동 받을 준비 안돼
부모한테서 학대를 당한 아이가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그린 그림. 누나를 잃고 자신도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림은 치유
의 과정을 보여준다. 1. 처음에는 사물을 제대로 그리지 못하다가 점점 형태를 갖춰간다. 그림 김정미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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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죽은 누나를 귀신으로 그린다. 그림 김정미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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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중엔 누나가 웃는 모습을 그렸다. 그림 김정미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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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크게 호전된 마지막 그림에서는 자신을 긍정하고 응원한다. 그림 김정미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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