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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5.05 21:59 수정 : 2015.05.06 15:48

[탐사기획] 부끄러운 기록 ‘아동 학대’ ③ 생존
맡길 곳 없는 아이들

재석이는 매미다. 한번 붙으면 좀체 떨어지지 않는다. 조심스런 탐색도 없다. 이 사람이다 싶으면 금세 달라붙는다. 엄마, 아빠 아니면 낯을 가리는 여느 다섯살 아이들과 조금 다르다.

세라는 힘센 사람인 척한다. “조용히 해”, “가만히 있어”, “기다려”. 일곱살 꼬마가 누구한테 배웠을까. 권위자 흉내를 잘도 낸다.

2003년 6월9일과 10일, 두 오누이를 상담한 선생님이 남긴 놀이일지다. 선생님의 눈에 비친 재석이는 “그저 안전하게 딱 붙어 있을 상징적 존재를 찾는” 아이다. 세라는 이렇게 기록됐다. “아마도 양육자의 행동을 그대로 모방한 것으로 추측된다.”

쉼터엔 나이가 제각각인 아이 대여섯이 더 있었다. 7월17일 한낮엔 편을 나눠 물총 싸움을 했다. 누군가의 욕설로 싸움이 중단됐지만, 다른 놀이가 이어졌다.

그날 이후로는 놀이일지엔 오누이가 함께 등장하지 않는다. 세라가 선생님의 나이(28)를 듣고서 떠올렸던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 탓이다. 세라 아빠는 스물아홉이었다. 선생님의 나이를 안 날, 세라는 종일 입을 닫았다.

세라와 재석이가 집에 왔다. 한달 만이었다. 새엄마가 둘을 기다렸다. 2002년 9월 무렵부터 두 아이를 학대해왔던 그다. 그해 겨울 오누이는 시퍼런 멍이 들었다. 막대기로 맞았다. 집에 늦게 들어왔다는 이유였다. 폭력은 계속됐지만 아빠는 침묵했다. 실직한 그는 생활비를 버는 아내한테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오누이가 다니는 교회의 전도사가 아이 몸에 난 멍자국을 보지 않았다면, 경찰도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새엄마는 체포됐다.

그제야 아이들은 안전했다. 둘은 쉼터에 보내졌다. 새엄마는 경찰에 “더는 학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덕분에 처벌은 면했다. 8월 말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풀려나자 그도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아이들의 몸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매번 “집에 늦게 들어온다”는 이유였다. 빗자루, 파리채, 나무막대기… 벽에 부딪히고 발로 차인 세라는 병원 이송 중 늑골 골절과 간 파열로 숨졌다. 2004년 2월2일 저녁 8시였다. 동생 재석이는 살아남아 4주간 치료를 받았다.

재석이는 다시 쉼터로 보내졌다. 이번엔 혼자였다. 상담 선생님의 기억과 사진엔 세라 없이 재석이만 재등장한다. 2005년 9월 청계천에 놀러간 재석이는 쉼터 누나, 형들과 사진을 찍었다. 그즈음 남한산성, 경기도 수원의 광교산으로도 소풍을 갔다. 재석이는 속상한 일이 있으면 책상 아래로 들어가서 서럽게 울곤 했다. “모든 아이들이 울긴 하지만, 재석이의 울음은 더욱 슬픔의 농도가 짙고 오래갔다.” 선생님의 기록이다.

재석이는 이제 열일곱이다. 쉼터에서 쭉 자랐다.

2003년, 우리 사회는 세라와 재석이를 새엄마와 아빠한테 너무 쉽게 내줬다. 그 뒤 ‘안녕한지’ 제대로 살피지도 못했다. 다시 격리했지만, 때는 너무 늦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이를 보호하지 못했고, 경찰과 검찰은 가해자한테 교정 없이 관대한 처분을 내렸다.

보호시설 격리뒤 한달
‘학대 않겠다’ 서약서만 믿고
부모에 되맡겨져
주검으로 돌아온 아이

10명 중 3명만 격리보호
7명은 여전히 가해자와 생활
분리하더라도 시설 부족
학대 아동 받을 준비 안돼

부모한테서 학대를 당한 아이가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그린 그림. 누나를 잃고 자신도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림은 치유 의 과정을 보여준다. 1. 처음에는 사물을 제대로 그리지 못하다가 점점 형태를 갖춰간다. 그림 김정미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장 제공
2. 죽은 누나를 귀신으로 그린다. 그림 김정미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장 제공
3. 나중엔 누나가 웃는 모습을 그렸다. 그림 김정미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장 제공
4. 크게 호전된 마지막 그림에서는 자신을 긍정하고 응원한다. 그림 김정미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장 제공
2009년, 다섯살 성준이도 제대로 격리보호를 받지 못했다. 처음엔 성준이와 두살 터울인 형 준수가 당했다. 두해 전이었다. 친아빠의 거친 손과 매가 준수의 몸을 할퀴었다. 똥오줌을 못 가린다는 이유였다. 눈두덩이와 얼굴에 시퍼런 멍이 들어서야 누군가가 신고했다. 조사가 이뤄졌지만 아이들은 격리되지 못했다. ‘다시는 학대하지 않겠다’는 아빠의 서약서로 상황은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리고 2년 뒤, 형이 아닌 동생이 아빠의 손에 짧은 생을 마쳤다. 학대 이유와 방식이 형한테 하던 그대로였다. 성준이 다섯살 되던 해다. 살아남은 형은 그제야 할머니집에 맡겨졌다.

2014년, 아동학대 10건 가운데 3건에 격리보호 조치가 취해졌다. 격리보호란 학대한 부모 등으로부터 아이를 떼어놓는 걸 말한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발표한 ‘2014년 아동학대 통계(속보치)’를 보면, 격리보호(최종 조치 결과 기준)는 전체 아동학대 9823건 가운데 2579건(26%)이었다.

격리보호 조치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10년 전 학대 피해 아동에게 취해진 조치 결과 가운데 16.9%였으나, 지난해 26%로 크게 늘었다. 가정 내 문제 해결 중시에서 사회적 개입 확대 쪽으로 움직여온 흐름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전히 열에 일곱은 격리조차 되지 않은 채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집에 그대로 머문다. 6년 전 성준이와 그 형이 그랬다. 사실 격리보호됐더라도 상당수는 시차를 두고서 원가정에 복귀한다. 세라와 재석이처럼 초기에 격리됐다가 한달 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2013년 기준 150건)도 꽤 된다. 잘못된 판단으로 준비가 되지 않은 집에 아이를 다시 돌려보내거나, 가해자와 아이를 분리해야 하는데 못할 경우 자칫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정익중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본디 원가정 보호가 좋다. 하지만 정확한 진단 없이 원가정 보호를 하는 건 큰 문제”라고 말했다.

가해자로부터 아이를 떼어내도,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아이를 받아낼 준비가 덜 되어 있다. 분리하더라도 보호할 시설이 충분하지 않다. 대표적 보호처라 할 쉼터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 교수는 “아이들을 맡길 데가 없다. 대안이 없으니 제대로 분리할 수 없다. 분리하더라도 가정에 빨리 복귀시키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36개였던 쉼터는 올해 22개가 늘어날 예정이다. 쉼터란 학대 피해 아동을 보호하고 숙식 등을 제공하는 곳이다. 국고와 지방비 보조를 받아 운영된다. 아파트와 단독주택 등에서 7명의 아동이 공동생활하며, 주로 중증 학대 피해 아동이 머문다. 쉼터의 증설은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의 환영할 만한 정책이지만, 한해에만 61%나 늘어난 수치는 이제껏 쉼터가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드러낸다. 증설 예정인 22개 쉼터마저도 4월 말 현재 10개 신청에 그치고 있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다른 시설에 견줘, 쉼터 선생님의 업무가 힘든데다 책정된 임금은 75% 수준으로 낮다. 국가에서 내려보낸 예산에 지자체가 보태면 좋을 텐데, 관심 있는 곳이 적다”고 말했다.

격리가 능사는 아니다. 아이는 가급적 가정 또는 가정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야 한다. 이 때문에 쉼터가 최적의 대안인지도 되물어야 한다. 김기현 성균관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가정으로 복귀시킬 경우 사후 관리가 제대로 되는지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 일단 분리하더라도 어디 한곳에 오래 머물 수 있도록 하거나 가정에 어떻게 복귀시킬지 처음부터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아동은 모두 익명이다. 기사는 한 상담사의 일지, 판결문, 사례 개요 등을 바탕으로 했다.

류이근 임지선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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