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기획] 부끄러운 기록 ‘아동 학대’ ⑤ 미제
인천 송도 지역 학부모와 어린이들이 지난 1월18일 오후 인천 연수구 송도동 센트럴파크공원 들머리에서 아동학대 추방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인천/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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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 없고 부모는 사고로 위장
검·경 수사기관은 소극적 태도 미국은 민·관 참여해 ‘데스리뷰’
철저한 아동사망 보고서 만들어
한국은 ‘서현이 사건’때 첫 보고서 사건 닷새 뒤 부인은 “남편이 사건 당일 새벽에 아이를 밟아 죽였다”고 진술했다. 남편이 체포됐다. 남편은 범행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인의 학대로 아이가 죽은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일곱달 만에 열린 1심 재판에서, 남편은 윤이에 대한 상해치사 혐의가 인정돼 12년형을 선고받았다. 아들을 밟아 죽인 비정한 아빠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반전은 채 석달이 걸리지 않았다. 2012년 1월,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이 열렸다. 법원은 1심 재판의 결정적 증거가 됐던 부인의 진술이 곳곳에서 흔들리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사건 당시 기억이 분명하지 않고, 아이가 죽은 날 보였던 부인의 태도 역시 석연치 않다고 봤다. 결국 남편의 상해치사 혐의는 증거 부족으로 무죄로 바뀌었다. 남편은, 부인에 대한 폭행 사실만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석방됐다. 지난해 7월 대법원 판결에서도 남편의 무죄는 그대로 유지됐다. 이번엔 엄마에게 의심의 눈길이 쏠렸다. 지난해 10월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임내현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검찰총장에게 사실상 이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촉구했지만, 검찰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대검찰청은 이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한겨레>의 질의에 “피해자 모친 진술의 신빙성을 놓고 검찰 및 1심 법원과 항소심 법원 간에 견해 차이가 있다”며 “항소심 판결에 의하더라도 특별히 재수사할 만한 단서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별도의 재수사를 하지 않았다”는 답변을 지난 6일 보내왔다. 부부 둘 중 한 명이 범인이 틀림없지만 검찰은 이를 확인하는 데 실패했다. 윤이 사망 사건은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학대로 사망한 아동 10명 중 7명(68.5%)은 5살 이하다. 아동들은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관련 기록을 남기지 못하는 나이들이다. 사건이 대개 가정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목격자도 존재하기 어렵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비슷한 또래의 형제자매인 경우가 많고, 아이의 진술은 종종 분명하지 않아 법원에서 핵심 증거로도 채택되지 않는다. 어린아이를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하더라도 사고로 위장할 수 있는 여지가 큰 것이다. 경찰 등 수사기관의 소극적인 태도도 문제다. 2012년 1월말 서울 도봉구 한 유치원에서 숨진 김나현양 사건은, 아이가 사망한 지 2년여 만인 지난해 11월에야 재판이 시작됐다. 김양은 유치원에서 발레 수업을 받다가 불 꺼진 강당에 홀로 남겨진 뒤 급성 심정지로 숨졌다. 발레 강사가 가해자로 지목됐지만, 경찰은 무혐의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 역시 2년 동안이나 기소하지 않고 사건 진행을 미뤘다. 검찰 관계자는 “시시티브이 등 증거 분석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말했다. 학대 아동 추모 누리집인 하늘소풍의 민정숙 대표는 “경찰은 유치원 설립자 등에 대한 조사도 하지 않은 채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검찰은 뚜렷한 이유 없이 사건의 기소를 미뤘다”며 “그사이 피해자 가족은 3년 넘게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사건 처리가 지연되면서 경찰과 검찰 등 사법당국에 대한 불신은 커졌다. 우리나라는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 대한 사법적 미비와 더불어 기본 통계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보건복지부는 아동학대 사망자 수를 집계하면서 경찰 자료는 활용하지 않은 채 아동보호전문기관의 통계만 이용하고 있다. 아동학대 사망자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국은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사망 사건의 경우 사망사례조사팀(Child Death Review)을 꾸려 조사에 나선다. 경찰과 검찰, 검시관, 아동부서 담당자, 공공보건 전문가, 소아과 의사나 가정의, 응급의료서비스 담당자 등이 참여해 무슨 이유로, 어떻게 아동이 사망했는지 파악한다. 아동 사망 예방을 위한 정책과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검증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국내에서는 2013년말 발생한 울주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서현 사건)에 대해, 남인순 의원과 아동권리학회, 세이브더칠드런, 보건복지부 등 민관이 모여 ‘이서현 보고서’를 낸 바 있다. 국내에는 그 이전까지 단 하나의 아동학대 사망 보고서도 없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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