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15 17:40
수정 : 2019.04.16 13:11
미국의 난민 위기는 근원적 안보 불안의 한 징후일 수 있다. 로마를 붕괴시킨 게르만족 난민 위기의 가능성을 느끼는 것이다. 미국 본토를 불가침의 성채로 만들기 위해 아메리카 대륙의 국가들을 성채 주변의 참호나 해자 정도로 취급한 대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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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1년 전인 2015년 11월 미시간주 버치런에서 열린 공화당 선거자금 모금 행사에서 지지자들 손을 잡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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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외정책의 출발인 먼로주의는 미국의 고립주의에 방점이 있지 않다. 오히려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미국의 패권 확인이다.
1823년 제임스 먼로 당시 미국 대통령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럽의 식민주의를 반대하는 대외정책을 천명했다. 유럽 열강이 아메리카 대륙의 국가들을 장악하려는 어떠한 시도들도 “미국에 대한 비우호적인 의향의 천명”으로 간주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신에 미국은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나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메리카 대륙은 미국의 영역이니 유럽 국가들은 간섭하지 말고, 대신에 미국도 아메리카 대륙 밖의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먼로주의 천명대로 아메리카 대륙은 불가침의 미국 영역이 됐다. 미국을 명실상부한 아메리카 대륙의 패권국가로 만들었고, 이는 양차 대전을 거치며 세계 패권 국가로 가는 미국 대외정책과 지정학의 기초가 됐다.
국제정치학자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자기 지역에서 경쟁자가 없는 패권국가만이 세계 패권국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중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서로를 견제하고 견제받으며 발목이 잡히는 반면,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아무런 안보 우려 없이 마음대로 국력을 밖으로 투사할 수 있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카리브해 연안은 미국에 사활적인 안보 이해 지대이다. 미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데다, 해양 세력인 미국의 해양력 기점이기 때문이다. 지중해가 로마제국의 호수라면, 카리브해는 미국의 호수이다. 냉전 시절 소련이 카리브해 중간에 있는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세우려다, 3차 대전도 불사하겠다는 미국의 반발을 산 이유이다.
미국의 남쪽과 국경을 맞댄 멕시코를 비롯한 중미 국가, 그리고 카리브해에 접한 남미 국가인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는 미국에 가장 중요한 중남미 국가들이다. 문제는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다른 열강이 넘보지 못하는 자신들의 뒷마당인 중남미, 특히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에 대해 편익에 상응하는 투자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유럽, 중동, 동아시아를 놓고 소련 및 중국 등과 각축을 벌이는 동안 중남미에서는 그럴 필요가 적었다. 즉, 중남미 국가들은 ‘굳은자’ 취급을 하면서 돌보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이런 방치가 새로운 대가를 부르고 있다. 쿠바 위기로 시작된 미국의 중남미 불안은 1990년대 콜롬비아의 마약 위기, 2000년대 베네수엘라에서의 우고 차베스 사회주의 정권 등장, 그리고 최근에는 미국 남쪽 국경으로 몰려든다는 중남미 난민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 남쪽 국경을 불법으로 넘으려 한다는 불법 이민자 위기는 1990년대 콜롬비아의 마약 위기가 한 근원이다. 1980년대부터 미국의 마약시장을 장악한 중남미산 마약은 주로 콜롬비아와 그 주변을 원산지로 하고, 그곳의 거대 마약상들에 의해 공급됐다. 콜롬비아의 메데인 카르텔 및 칼리 카르텔은 주로 해로와 공로를 이용해 플로리다 등으로 마약을 공급했다.
이에 빌 클린턴 및 조지 부시 행정부는 마약 루트인 공로와 해로를 차단하는 한편 콜롬비아 정부와 손잡고 무력진압을 통해 메데인 카르텔 등을 붕괴시켰다. 하지만 이는 풍선효과를 낳았다. 차단된 해로와 공로 대신에 인편을 이용한 육로가 마약 루트로 개척됐다.
새롭게 열린 마약 루트에 있는 멕시코에서는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을 능가하는 카르텔들이 2000년대 이후 급속히 등장했다. 이는 2006년부터 현재까지 약 20만명이 숨진 멕시코 마약전쟁을 낳았다. 중남미 전체에 심각한 사회불안을 야기해 현재의 난민 위기를 배태했다. 체포와 탈옥을 반복하다가 현재 미국에서 재판 중인 멕시코 시날로아 카르텔의 두목 호아킨 구스만이 그 증거이다.
사실 현재의 난민 위기는 트럼프 행정부가 보수적 백인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엄살이기도 하다. 160만명에 이르던 2000년의 불법 이민자 구금·체포에 비하면 지난해에는 그 25%인 40만명에 불과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를 원점으로 돌리는 한편 쿠바·니카라과·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 성향 정권을 붕괴시키는 중남미 전략을 실행 중이다. 현대판 먼로주의라 할 수 있다.
이는 미국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근원적 안보 불안의 한 징후이다. 로마를 붕괴시킨 게르만족 난민 위기의 가능성을 느끼는 것이다. 미국 본토를 불가침의 성채로 만들기 위해 아메리카 대륙의 국가들을 성채 주변의 참호나 해자 정도로 취급한 대가이기도 하다.
정의길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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