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5.06.29 18:43 수정 : 2015.06.29 18:43


나란히 걷던 아이가 처음 말을 걸어왔다. “동물 좋아하세요?” 처음 만나 건네는 첫 질문치고는 좀 엉뚱했다. 집이 어딘지, 고향이 어딘지, 형제가 어떻게 되는지, 호구조사에 가까운 것들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게 신선했다. 그 아이는 고양이와 함께 산다고 했다. 혼자 살고 있느냐는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나는 휴대폰 바탕화면을 보여주었다. 한없이 유순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진돗개 사진이었다. 친구가 문자로 보내준 것이라고 설명도 덧붙였다. 말로 전하는 안부 대신에 동물들 사진을 보내주는 친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키우는 고양이가 키보드 위에 엎드려 있는 사진, 잠자는 아기곰 사진, 해맑게 뛰어노는 강아지 사진 같은 것들을 잔뜩 보내주는 것으로써 안부의 말을 대신하는 친구가 있는데, 말보다 훨씬 보송한 행복감이 전해져서 좋다고 말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업이어서일까. 말에 실리는, 사람을 쥐락펴락하는 힘을 잊고 싶을 때가 있다. 말에 실린 힘의 왕래가 부재하는 사이를 가장 좋은 사이라 믿을 때가 많다.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이모티콘으로 말을 대신하며 문자를 주고받는 게 유행이 된 것도 나 같은 사람이 많은 탓 아닐까. 동물을 좋아하느냐는 그 아이의 말을 흘리듯이 들어버린 것이 뒤늦게 후회가 된다. 다음에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함께 사는 고양이의 이름은 무엇인지를. 어쩌다 그 이름을 갖게 됐는지를. 그러곤 휴대폰에 잔뜩 들어 있을 고양이 사진을 보여달라고 말해야겠다.

김소연 시인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김소연의 볼록렌즈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