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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7.06 18:48 수정 : 2015.07.06 18:48


친구가 베란다 화분에다 목화씨를 심었다. 매일매일 화분 사진을 찍어 에스엔에스(SNS)에 올렸다.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사진을 구경했다. 오늘은 64일째가 되었다. 손톱만 한 새싹이었다가, 삐뚤빼뚤 엉성한 모습이었다가, 오늘은 제법 목화답게 이파리가 커다랗고 건강해 보였다. 늦잠을 자고 일어난 아침에, 해가 드는 창문 앞에서 커다랗게 기지개를 켠 다음, 슬리퍼에 발을 넣고 베란다로 나갈 친구의 모습이 상상됐다. 잠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두 눈을 비비면서, 뒤통수에 새집을 지은 채로, 눈곱도 떼지 않은 채로 목화가 얼마나 자랐는지를 살펴보겠지. 사진을 찍어두겠지. 생각보다 예쁘지 않게 자라고 있는 모습에 그게 더 재미있다며 씨익 웃겠지. 화분 속에 지지대도 만들어줄 테고, 벌레가 먹어 구멍이 난 이파리를 뜯어주기도 할 테고, 그 구멍 난 이파리를 버리지 않고 책상 위에 가져와 어쩌면 작품을 만들려고 애를 쓸 수도 있겠지. 머지않아 기대도 않던 꽃이 피겠고, 꽃이 진 자리에 둥근 몽우리(다래)가 맺힐 테고, 다래가 벌어지면서 희디흰 목화솜이 꿈처럼 몽글몽글 맺혀 있겠지. 그 목화솜 안에는 맨 처음 친구의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던, 하얀 털이 보송보송한 단단한 목화씨가 가득 들어 있겠지. 자랑스러운 표정을 하고서, 누군가에겐 목화솜을 선물로 줄 테고 누군가에겐 씨앗을 선물로 주겠지. 아마도 나는 내년 여름 끝 무렵, 베란다에 서서 “몽우리다!” 하고 소리를 지르며 기뻐하게 될 것만 같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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