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8.31 18:36
수정 : 2015.08.31 18:36
선풍기를 다용도실에 넣어두려고 덮개를 씌웠다. 선풍기가 들어갈 자리가 안 보였다. 여름을 맞으며 꺼냈으니 그만큼의 자리는 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런 빈자리는 늘 생활이 앗아가 버리곤 했다. 어찌어찌 쌓여간 어정쩡한 물건들을 대대적으로 정리하겠다고 소매를 걷어붙였다. 물건들을 하나하나 마루에 꺼내 놓았다. 어디다 사용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오히려 버릴 수가 없는 전선들. 사은품으로 받은 장난감 사이즈의 선풍기와 요가매트. 빈 화분. 전에 살던 집에선 유용했던 재활용 분리수거함과 빨래건조대와 접이용 의자. 그리고 폼나게 생긴, 크고 작은 상자들. 일년 사계절을 겪는 동안 한 번도 꺼낸 적이 없는 물건들. 있었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있던 물건들. 앞으로도 사용할 가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을 버리려면 약간의 용기와 핑계가 필요했다. 물건 하나하나에 핑곗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녹슬거나 찌그러진 부분을 발견하고 반가워했다. 하나하나 살펴보다 버리기로 결정할 때마다 단호한 내 모습이 뿌듯했다. 하나하나 분리수거를 했다. 애매한 물건을 손에 들고서 인터넷 검색도 동원했다. 전선은 고철인지 플라스틱인지. 나무 재질과 토기는 재활용이 되는지. 고물장수처럼 엘리베이터 가득 싣고 분리수거장으로 갔다. 가게에서 대형폐기물 스티커를 사서 붙였다. 선풍기와 안 버린 물건들을 다시 다용도실에 차곡차곡 넣어두니, 다용도실이 훤했다. 다용도실에 여유가 생겼는데 내게 여유가 생긴 것만 같았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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